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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면서 쇠스랑처럼 몇 개의 자락이 ‘물(勿)’자 꼴로 뻗어 북에서부터 읍내동, 송촌동, 가양동이 勿자의 한 계곡씩 차지하고 있다. 쌍청당은 송유가 낙향해서 1432년에 안채에서 조금 떨어져 지은 별당이다. 꽤 오래된 집인 만큼 나중에 지어질 이 동네 집들의 전형이 된다. 집 이름을 자신의 호로 삼는 것은 왕왕 있는 일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이 집은 민가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단청이 되어 있다. 당시 단청 원료는 중국에서 수입해 썼으므로 대단히 비쌌다. 이러한 사치를 보다 못한 세종은 1429년 민가에 단청하는 것을 금했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가 아니라서 이 법이 실제로 시행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동춘당은 그 와중에 옛 방식으로 단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은 그 후 1937년까지 7차례를 중수하면서 계속 이 단청을 유지해 왔다. 1563년 중수기에 “가정 계해년에 내가(송남수·송유의 5대손) 또 옛 제도에 따라 지붕을 얹고, 기둥과 주춧돌을 각각 그 자리에 놓고 화채(단청)를 더하였다”고 적었고, 1616년 정유재란이 끝난 후에는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다시 세웠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