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간 6만건 경찰력 낭비
본보 4월 11일자 A1면
경찰은 A 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 입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13일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섣불리 형사입건을 했다가 무혐의로 결론나면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즉결심판에도 넘기지 못한다. 기존 방식대로 A 씨를 즉결심판에 넘기면, 경찰관 60명이 2시간 동안 투입돼 다른 곳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치안공백이 만들어진 데 대한 죗값이 최대 10만 원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112 신고는 모두 995만1202건으로 하루 평균 2만7260건이었다. 이 중 경찰의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처지 비관이나 하소연성 전화가 3통 중 1통꼴이다. 또 신고자가 상황을 잘못 판단한 오인신고는 3.2%인 31만9139건, 의도적인 허위 장난 전화는 0.11%인 1만680건이었다. 오인 또는 거짓신고를 받은 경찰이 하루 평균 876차례나 헛걸음한 셈이다.
처벌 강도도 문제다. 경찰은 폭발물 설치처럼 막대한 공권력이 투입되는 등 거짓 신고의 경우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입건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0.5∼1%에 불과하다. 대부분 즉결심판에 회부되는데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 등의 처분을 받는다.
미국은 거짓신고가 확인되면 경찰 출동으로 소요된 액수에 상응하는 벌금을 물린다. 사안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최대 수억 원까지 벌금이 올라간다. 다른 국민이 낸 세금을 낭비하게 한 만큼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자녀가 장난으로 911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어려서부터 철저히 가정교육을 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장난전화 방법과 녹음된 장난전화 음성을 공유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거짓 신고는 112 근무자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드는 폐해도 낳는다. 서울경찰청 112센터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몇 번 거짓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허탕을 치고 나면 그 이후 들어오는 신고에 대해선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경기 수원시 20대 여성 피살사건을 계기로 거짓 신고자를 엄벌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거짓 신고 처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고, ‘애들이 장난 전화 한 번쯤 할 수 있지’하는 국민정서 때문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