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Compartment C Car 193.아트블루 제공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저는 늘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아니 여행을 떠나온 느낌이 듭니다. 그의 그림에는 고독한 얼굴을 한 현대인들이 주로 나옵니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이나 한낮의 담벼락이나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시선이 어긋나거나 각자 자신의 내면에 침잠한 모습입니다. 그중에서도 그는 여행을 떠나는, 또는 떠난 여성 여행자들을 많이 그립니다. 그림의 어딘가에는 여행 트렁크가 자주 보입니다. 열차에서, 카페에서, 호텔에서 혼자 있는 여성 여행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녀들의 내면의 무늬가 애잔하게 아롱대는 것 같습니다.
재작년에 저는 3개월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파리에 홀로 머문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여행을 하고 싶어 그리스로 떠났지요. 아테네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거리인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의 노을을 보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밤이 이슥해져 있었습니다. 플라카 지구의 노천카페에 들어가 늦은 저녁으로 문어 구이와 맥주를 시켜 여독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저녁 손님들도 물러간 시각, 누군가가 제게 말을 붙여왔습니다. 대각선 쪽에 앉아있던 여자였어요. 그녀 역시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트게 된 그녀는 수전이라는 이름의 55세 미국 여성이었습니다. 워싱턴에 살고 있는 그녀는 결혼한 지 30년이 넘은 주부로 생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왔다고 합니다. 혼자 유럽에 와보는 게 꿈이었다고. 그 꿈을 가족들에게 늘 환기시키곤 했는데 이번에 남편과 자식들이 그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왜 아테네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파리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수전노’ 남편이 아테네행 비행기표를 덥석 끊었기 때문이라며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난생 처음 생일 선물로 받은 이 여행 선물이, 특히나 가족을 두고 홀로 떠난 이 여행이 너무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행복에 겨운 듯 말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에요.”
수전도 그걸 느끼고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합석하지 않고 대각선 방향으로 두 테이블 건너 떨어져 앉은 채 간혹 잔을 들어 미소를 짓거나 했던 것은 그녀나 저나 홀로 만끽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존중해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밤이 깊어가는 아테네의 텅 빈 레스토랑의 두 여자의 모습이 지금 생각하니 꼭 호퍼의 그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