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보면 대부분은 상당히 괜찮다. 인간적인 매력도 넘치고, 경륜과 학식도 풍부하고, 사명감이나 나라의 비전에 대한 내공도 만만치 않다. 국회를 처음 출입할 때 직접 만난 국회의원들이 TV에 비친 모습과 다르다는 점에 상당히 놀랐다. 어쨌거나 경선과 본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그 자리에 서려면 치열한 자기 단련과 기민한 판단력, 배짱이 필요하다. 비례대표도 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릴 정도로 성과를 내면서 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괜찮은 의원들이 모여 국회를 왜 그 꼴로 만드나. 지지자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지지자들이 정치인에게 운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하다고 믿어도 농촌 지역구 의원이라면 본심을 드러내선 안 된다.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지지층이 그걸 ‘의거’라며 통쾌해하면 말을 삼가야 한다. 팟캐스트 팬들의 눈치를 보다 막말 후보를 퇴출하지 못한다.
▷유권자들의 취향과 요구는 날로 까다로워진다. 과거 낙선운동은 도덕성이나 준법성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제 뜻이 다르면 심판 대상이다. 4대강이나 FTA 같은 큰 정책 이슈는 물론이요 원자력이나 영리 병원에 찬성하거나, 특정 지역 재건축에 호의적이지 않거나, 반려동물 진료에 세금을 더 매기려 한다는 이유로도 살생부에 오를 수 있다. 반면 정치인의 영향력은 나날이 줄어들어 생각이 다른 지지층의 의견을 돌리고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졌거나, 적어도 그런 시도라도 하려는 이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이게 민주주의와 대의제의 필연적인 귀결일까. 그렇다면 국회의원을 저질이라고 욕하는 건 누워서 침 뱉는 행위다. 의회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정확히 반영한다. 의원 후보들이 유권자들 앞에선 ‘머슴이 되겠습니다’라고 수없이 약속하지만 정말 머슴 역할에만 충실하다가는 소신을 펴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소신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압도당할 때 쇼와 꼼수와 테크닉이 판치게 된다. 19대 국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당선자들에게 소신을 발휘할 여지를 줘보는 게 어떨까. 유권자 개개인이 출구 없는 진영 논리와 ‘카타르시스의 정치’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과 자기비판의 자세를 가져보자는 얘기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