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석 삼 寸: 마디 촌之: 어조사 지 舌: 혀 설
기원전 257년 서쪽 강국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나라 왕은 평원군(平原君)을 남방의 초나라로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게 하는 맹약을 체결하려 했다. 평원군은 문무를 겸비한 스무 명의 인재를 뽑으려 했고 19명은 선발했으나 마지막 1명이 문제였다. 그러자 3년 동안 눈에 띄지 않던 식객(食客) 모수(毛遂)란 자가 나타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평원군을 탓하면서 자신은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낭중지추) 수준이 아니고 송곳의 자루 수준이라고 호기롭게 자천(自薦)하는 것이었다. 주머니는 평원군이고 자루는 물론 모수요, 송곳의 끝은 다른 식객들의 하찮은 재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의 무례(無禮)는 하늘을 찌를 법하다. 평원군은 모수를 일행에 끼워 넣었다.
초나라 왕을 찾아간 평원군은 그와 밤새워 담판을 벌였으나 오만방자한 초왕의 태도로 인해 새벽까지 결말이 나지 않아 나머지 식객들도 초조하게 문 밖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모수가 칼을 잡고 초왕에게로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의 태도가 너무나 무례합니다. 저와의 거리가 겨우 열 걸음에 불과하니 대왕의 목숨은 제게 달려 있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모수의 이 말에 초왕은 합종의 맹약을 체결하게 된다.
연횡가로 유명한 장의(張儀)의 ‘시오설(視吾舌)’이란 말도 내 혀를 보라는 말로, 변설로 천하를 움직일 수 있음을 비유한다. 고조 유방을 만나 변설로 설득시킨 역이기((력,역)食其)나 사로잡힌 고조를 도운 후공(侯公)이란 자의 ‘삼촌설(三寸舌)’도 유명하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