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 ‘마늘 먹고 쑥 먹고’ ★★★★☆
오태석 씨의 연극 ‘마늘 먹고 쑥 먹고’는 단군신화 속 웅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동물, 고전과 현대, 남과 북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적 풍자와 해학의 미학을 흥겹게 풀어낸다. 국립극단 제공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이수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단다. 올해가 단기 4345년이라고 해서 4345세라고 나이까지 꼭 집어 말한다. 틀렸다. 단기는 단군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부터의 햇수이니 단군의 어머니는 그보다 40∼50세는 많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 유희를 닮은 연극에서 그게 무슨 대수랴.
이 웅녀 할멈이 하회탈의 본고장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 동신(洞神)인 허도령(김정환)을 모시는 사당서 산단다. 헤헤헤. 허도령은 하회탈을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물이지만 그래봤자 고려시대 인물인데 더 나이 많은 웅녀가 신령으로 받들고 산다니…. 이 역시 어른들의 잡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할멈에겐 한이 있다. 당시 함께 동고동락했던 호랑이와 사람이 돼 짝을 짓고 싶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허도령에 따르면 웅녀가 환웅의 짝이 될 것을 내다본 호랑이의 쿨한 양보였단다. 허도령도 요즘 멜로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여기에 봉산탈춤의 한 대목이 섞인다. 원숭이들을 사주해 손님 등쳐먹는 고무신 장수(강의모) 이야기다. 허도령이 준 호랑이 탈을 들고 읍내에 갔던 할멈의 손녀딸 순단(부혜정)이 신 장수에게 호랑이 탈을 씌워준다. 호랑이로 변한 신 장수는 자신의 업보를 씻기 위해 할멈, 순단과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간다, 간다, 이북으로 넘어간다.
압권은 이제부터다. 일행은 대동강변에서 탈북자 순기(송영강)를 만난다. 남한사회에 정착하지 못해 해외를 떠돌던 순기는 북한에서 식량난을 해소할 방안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재입북했다. 그런데 그 방안이 기발하다.
조선 사람은 모두 곰의 후손이라는 점에 착안해 1년 중 4개월을 밥 안 먹고 겨울잠을 자며 견디는 곰의 DNA를 추출해 사람들을 번갈아 겨울잠 자게 하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고나면 야생 곰의 상태로 만주벌판에서 살다오게 한다.
국립극단이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서막을 여는 이 작품은 오태석 연극미학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사람이 동물 되고 동물이 사람 되는 신화적 상상력과 온갖 텍스트를 넘나들며 생략과 비약의 유희를 펼쳐온 오태석 연극이 만나 황홀경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사람과 동물, 산 자와 죽은 자(남한에서 타살된 백범 김구와 북한서 타살된 고당 조만식), 남과 북, 가면과 가면 뒤의 민얼굴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물아일체의 황홀경이다. 단군설화, 하회탈 전설, 봉산탈춤 같은 고전 텍스트뿐 아니라 ‘내 사랑 DMZ’와 ‘북청사자야, 놀자’ 같은 오태석 자신의 이전 텍스트의 경계까지 허물었다는 점에서 득의양양한 성취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오태석 작품과 달리 어린이들조차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감히 오태석 연극의 진화라고 말하고 싶다. 얼쑤.
:: i ::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88-590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