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은 원래 귀금속상이 금화를 보관해주던 일에서 시작됐다. 부유한 상인이 귀금속상에게 금화를 맡기면 귀금속상은 ‘은행권’(지폐의 옛 이름)이라는 보관증을 내주면서 보관료를 받았다.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일은 본래 은행이 아니라 ‘대금업자’들이 했다. 대금업은 성경에서 금지해 놓은 것으로 기독교권이나 이슬람권에서는 경멸을 받았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대금업자 샤일록을 악랄한 인간으로 설정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대금업자를 위한 지옥을 따로 마련해 뒀다.
▷요즘 금융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자 젊은이들이 매우 선호하는 직장이다. 금융업의 종류도 전통적인 은행 증권 보험업뿐만 아니라 신탁 여신전문 벤처캐피털 신용평가 신용보증 자금중개업 등으로 세분돼 있다. 현대 금융업의 역할은 ‘여유자금의 중개’에 머물지 않는다. 자금 중개의 결과, 사회의 가용(可用) 자원을 생산성이 가장 높은 부문부터 할당함으로써 전체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즉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높은 조달금리와 낮은 주가’로 벌을 주고 도태시켜 경제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 금융이 눈부시게 진화 발전해 가는 와중에도 음지에서는 채무자를 옥죄는 고리채(高利債)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지적장애인 부부에게 350만 원을 빌려준 뒤 돈을 갚지 못하자 임신 5개월 된 부인에게 낙태를 강요한 뒤 노래방 도우미로 강제 취업시킨 사람들이 적발됐다. 연 3000% 이상의 고금리를 강요한 사례도 보도됐다. 이쯤이면 채귀(債鬼)보다 악독한 조직폭력배의 돈놀이다.
▷일각에서는 자유거래 원칙을 내세우며 고금리를 제한하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경제적 약자의 궁벽한 상황을 악용한 ‘채무 노예화’는 시장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다. 정부가 고리채에 적극 개입해 바로잡아야 한다. 물론 고리채를 불법화하고 조폭 행태의 사채업자를 단속한다고 바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자칫 사(私)금융이 음성화돼 더 큰 부작용을 키울 수도 있다. 금융 소외계층에게 합법적 금융 기회를 충분히 열어주고 알려줘야 한다. 또 대부업체의 폭행 협박은 불법이며 연 39% 이상의 고리채 이자는 갚을 필요가 없음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