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씨 아들 임수현 교수 예술감독 맡아 ‘가업’ 승계‘연기 속의 그녀’로 연출 데뷔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그 묘한 긴장감에 많은 것이 담겼다. 프랑스에서 10년 유학생활을 하고 대학교수로 자리 잡은 아들이 아버지가 27년간 이끌어온 산울림소극장을 이어받기로 했다. 연극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재산을 물려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0석 미만의 소극장을 운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아버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연극은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하고, 가족이 인정하고 지지해줘야 할 수 있어요. 잘 해야 겨우 본전인 소극장 운영은 더욱 그렇고. 지난해 가을 이 녀석이 첫 안식년에 들어갔기에 ‘너만 좋다면’ 하고 운을 뗐더니 ‘늘 부모님 고생하시는데 도움이 못 돼 죄스러웠는데. 한번 맡아 보겠다’ 하더군요.”
초등학생 때 이 극장에서 공연한 ‘고도를…’을 보고 연극에 눈을 뜬 임 교수는 불문학자인 어머니의 길을 쫓다가 어머니가 퇴직한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의 교수가 됐다. 이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버지의 길을 쫓아 연출가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제 석사와 박사 논문을 ‘고도를…’을 쓴 사무엘 베케트로 썼습니다. 꼭 베케트를 쓰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고, 꼭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이 자리에 선 걸 보면 운명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산울림소극장은 임 교수의 누나인 임수진 씨(49)가 어머니가 맡던 극장장으로 하드웨어를 책임지고 임 교수는 아버지가 맡았던 예술감독으로 소프트웨어를 책임지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임영웅 씨는 매년 올리는 ‘고도를…’의 연출 정도만 맡는다.
첫 단계로 임 교수는 지난주 산울림에서 개막한 ‘연기 속의 그녀’(에마뉘엘 로베르 에스팔리외 작)로 연출 데뷔했다. 담배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한 쌍의 연인을 통해 주체와 타자의 진정한 소통을 경쾌하게 풀어낸 프랑스 번역극.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대학살의 신’ ‘게이 결혼식’ 등 프랑스 희곡을 번역해온 임 교수가 산울림의 세대교체를 알리기 위해 고른, 세련된 소품이다. 서은경과 최규하 두 젊은 배우가 호흡을 맞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