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2분 때 밀었는데 허리-어깨 쑤시고 목이 탔다
‘어깨 힘은 빼고, 몸 전체를 이용해….’ 아무리 마음속으로 되새겨도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18일 본보 신진우 기자(가운데)가 목욕관리사 체험을 하는 도중 힘들어 인상을 찌푸리자 앞에 있던 사부가 충고했다. “기술이나 경력보다 중요한 게 봉사정신입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네.’ 그러나 3초도 안 돼 생각을 다시 주워 담았다. 허리에 밀려오는 통증만큼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허리를 부여잡은 채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한 40분쯤 지났겠지.’ 한숨을 크게 쉬며 시계를 봤더니 수건을 잡은 지 고작 12분이 흘렀다.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본 ‘사부’가 슬쩍 다가오더니 싱긋 웃으며 얄밉게 한마디 던졌다. “몸이 좀 풀린 것 같네요.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요?”
전국적으로 5만 명가량 종사하고 있다. 월수입은 150만∼500만 원. 최근엔 고령의 퇴직자는 물론이고 20대 고학력 젊은이들까지 몰릴 만큼 인기다. 이 직업은 뭘까.
정답은 ‘목욕관리사’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목욕관리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이 직업의 장점은 경기나 계절을 잘 타지 않고 노력에 비례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 과거 ‘때밀이’로 불리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전문직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생긴 목욕관리사 양성 학원만도 지금은 전국적으로 30∼40곳에 이른다.
그런데 듣기만 해선 어떤 직업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체험을 해 보기로 했다.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의 학원(‘영등포피부목욕관리사협회’)에서 일일 수강생이 돼 ‘때미는 법’을 배워봤다.
기자의 멘토는 경력 30년의 베테랑 목욕관리사 김모 씨(58). 옆에 있던 수강생은 “사부님을 잘 골랐네. 저분이 정말 ‘목욕의 신’”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기사와 관련없음. sbs뉴스
사부는 “수건을 잘못 쥐면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며 “때를 밀고난 후의 피로도 역시 제대로 쥐고 했을 때보다 두 배 이상 더 크다”고 강조했다.
사부는 설명과 함께 직접 수건 쥐는 법을 보여줬다. 일단 마른수건과 ‘이태리타월’을 겹쳐 배 위에 놓고 고정시킨 뒤(마른수건이 안쪽), 그것들을 손에 두 바퀴 정도 둘렀다. 그러고선 엄지손가락을 검지 위쪽으로 올려 수건을 고정했다. 그렇게 해야 때를 밀 때 엄지손가락이 걸려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사부가 말했다. “수건 잡는 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 있어요. 방금 배운 게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고요.”
참고로 이태리타월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봐 온 그 ‘때수건’. 기원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가장 유력한 건 50여 년 전 부산에서 직물공장을 하며 수건을 생산하던 사람이 상품화했다는 설. 그는 까칠까칠한 표면의 수입 원단을 목욕할 때 우연히 사용하게 됐는데 시원하게 때가 벗겨지는 걸 보고 특허를 냈고, 그게 히트상품이 됐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태리타월은 이탈리아에서 개발한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비스코스 레이온’이란 원단을 사용했을 뿐 한국인이 만든 자랑스러운 문화상품이다. 이태리타월은 최근 일본 등에 수출할 만큼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기자가 본 이태리타월은 양면으로 돼 있었다. 사부는 각 면의 용도가 다르다고 설명해줬다. “고객이 살살 밀어주길 원할 땐 부드러운 면으로, 다소 강하게 밀어주길 원하는 고객에겐 거친 면으로 뒤집어 사용하면 됩니다.”
○ 돌출 부위 잘 밀어야 A급 목욕관리사
머리를 긁적거리며 서 있는데 사부가 다가와 손바닥으로 기자의 무릎을 쳤다. “무릎을 굽히세요, 기마자세를 하는 것처럼. 어깨 힘은 빼고, 발뒤꿈치는 살짝 들고, 허리는 가급적 세우고, 몸 전체를 이용해 밀어보세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사부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는 리듬을 타면서 몸의 반동을 이용해 때를 밀었다. 왈츠에 맞춰 춤을 추는 댄스스포츠선수를 연상시키는 그 유연한 몸동작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사부는 “항상 머리부터 때를 미는 방향으로 움직이라”면서 “상체와 하체를 하나로 연결해 유연하게 몸을 흔드는 게 핵심”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때를 밀 땐 손 모양도 중요하다. 사부는 “달걀을 쥐듯 손바닥 가운데를 약간 오므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야 피부와 타월의 마찰면적이 최대가 되고(피부는 곡면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손에 전달되는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때를 밀 땐 위아래로 오가면서 반복하되 보통 아래로 밀 땐 40%, 위로 밀 땐 60% 정도의 힘을 주는 게 정석이라고 했다. 반면 그 때를 걷어낼 땐 일정한 힘으로 위에서 아래, 한 방향으로 하는 게 효과적이란다.
그런데 실습을 하다 보니 신체 부위마다 난도가 달랐다. 허벅지, 엉덩이 등 평평한 부위는 할 만한데 관절부위의 때를 밀 땐 힘 조절에 실패해 누워 있는 수강생의 피부가 벌겋게 됐다. 이때 사부가 설명했다. “팔꿈치 발뒤꿈치 쇄골 갈비뼈 등 돌출 부위를 밀 땐 힘을 빼야죠. 또 손바닥 각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면서 살짝 수건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합니다. 돌출 부위 때를 부드럽게 잘 밀어야 A급 목욕관리사 반열에 올라설 수 있어요.”
부위별로 설명을 들으며 대충 한번씩 다 밀어 보니 1시간이 걸렸다. 남성의 경우 전문 목욕관리사가 고객 1명의 때를 미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15∼20분. 경력과 노하우만 쌓인다면 50대라 해도 거뜬히 하루 20명 이상의 손님을 받을 수 있단다.
그런데 문득 의문점이 생겼다. 때를 밀면 피부를 보호하는 각질층이 벗겨져 피부에 손상이 가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박영희 영등포피부목욕관리사협회 원장은 “이젠 때를 미는 것이 예전처럼 박박 밀어내는 게 아니라 피부를 만져주고 마사지하는 개념으로 바뀌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박 원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여자 손님의 경우 팔의 각도를 좁히고 좀 더 세심하게 밀다 보면 시간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더 걸려요. 여성의 때를 미는 방법도 한번 배워 보시겠어요? 물론 실습은 남성을 대상으로 해야겠지만요.”
대답이 나오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요. 다른 일정이 또 있어서요.” 그러고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 목욕관리사들이 말하는 ‘스스로 때 밀기’ 10가지 원칙
몸이 뻐근하다. 또 왠지 근질거린다. 목욕관리사의 시원한 손길이 애타게 그리운 나른한 오후. 그런데 동네 목욕탕은 너무 멀다. 그렇다면 직접 해결하려 할 때 참고할 만한 노하우는 없을까. ‘O₂’가 경력 10년 이상 목욕관리사 3명의 조언을 바탕으로 ‘스스로 때 밀기’ 10계명을 소개한다.
1 때를 미는 건 1, 2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 지나치게 자주 밀면 피부가 상한다.
2 자기 피부가 자극에 얼마나 민감한지부터 체크하자. 힘 조절, 타월 선택 등도 피부에 따라 달라진다.
3 목욕 전 물이나 우유를 충분히 마셔두자. 물이나 우유는 몸속에서 땀이 잘 빠지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때를 밀 때 피부 노폐물까지 제거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4 때를 밀기 직전 뜨거운 물에 10분 정도 들어가 때를 불리자. 물 온도는 40도 전후가 적당하다.
5 혼자 때를 밀 때는 타월의 양면 중 부드러운 쪽을 사용하자. 전문 목욕관리사의 경우 적당한 힘과 각도로 때를 밀기 때문에 거친 부분을 사용해도 되지만, 일반인에겐 어려울 수 있다.
6 아마추어는 힘 조절에 서툴다. 앞뒤로만 때를 밀다보면 피부에 자극을 줄 가능성이 크다. 가급적이면 둥글게 원을 그리듯 미는 게 안전하다.
7 때 미는 순서는 다리→팔→몸통이 정답. 이유가 뭐냐고? 그냥 그렇게 해야 힘이 덜 든단다.
8 손이 잘 닿지 않는 등도 긴 때밀이 타월을 이용해 꼼꼼하게 문지르자. 근육이 뭉치기 쉬운 어깨와 등을 제대로 밀어주면 상쾌함이 두 배가 된다.
9 때를 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과정이 마무리 비누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마사지하듯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눌러주며 비누칠을 하면 목욕이 즐겁다.
10 여유는 즐기되 때를 밀 때만큼은 집중, 또 집중! 목욕 시간은 50분을 넘기지 않는 게 피부 건강에 좋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