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25억 원을 들여 실시한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부실투성이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학부모들은 “통계가 맞다면 그동안 폭력학교에 아이를 보내고도 몰랐던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반면 일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일부 학교는 “잘못된 조사로 학교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엉터리 조사 여파로 교육 현장에 불만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 믿기 어려운 수치에 학부모는 심란
경북 안동에 사는 서모 씨(43)는 20일 3학년 쌍둥이 형제가 다니는 K초등학교가 ‘일진 학교’로 지목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설문에서 ‘일진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일진 인식 비율)이 전국 초등학교 평균(23.7%)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은 37.4%였다. 서 씨는 “학교폭력 문제는 대도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영주에서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정부 조사 결과도 안 좋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 학교도 주먹구구 통계에 황당
‘폭력학교’로 지목된 일선 학교들은 조사 결과가 잘못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B초등학교 관계자는 “최근 2년간 문제가 될 만한 폭력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는데 발표를 보고 황당했다”며 “폭력학교로 오해하는 학부모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지역 중학교 중 일진 인식이 가장 높았던 강북구 K중학교 관계자는 “폭력서클도 없는데 76.1%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며 “힘 좀 쓰고 까부는 학생 모두를 ‘일진’이라고 적는 바람에 결과가 과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재학생 대비 응답자 수가 현저히 적은 몇몇 학교도 “통계 수치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진 인식 비율이 66.7%인 충남 천안의 C고교 관계자는 “학생 1310명 중 고작 6명이 설문에 응답했는데 이 중 4명이 일진이 있다고 대답해 ‘폭력학교’로 낙인찍혔다”며 “이런 주먹구구식 통계자료를 공개하는 일 자체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 폭력 피해 학교, 오히려 응답률 낮아
지난해 12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자살한 광주 북구 J중학교는 “일일이 전화를 돌려 설문 참여를 유도했다”고 했지만 이 학교 정모 양(15)은 “전화는커녕 가정통신문도 오지 않았고 아예 설문지를 못 본 친구도 많다”고 했다.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방학 중 우편으로 실시한 설문이었던 만큼 불참 학생에게 설문지를 다시 보내고 전화나 문자를 동원해 응답률을 높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