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예쁜 필기구 보면 마음이 푸근
나는 내 주변에서 구한 작은 사물들을 그토록 편애한다. 실용적 차원에서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형태와 색상, 질감과 디자인을 마음껏 감상하고 주물러댄다. 그것은 사물과 유희하는 일이자 더불어 몽상에 잠기는 일이다. 세상에서 고독한 나를 그 사물은 구원해 준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사물은 특정한 도구이기 이전에 놀이와 연동된 것으로 변질된다. 사물에 부여된 기능성을 벗어나 다른 관점에서 보는 이, 다루는 이가 아이들이고 그들이 바로 타고난 예술가이기도 하다. 예술은 모든 사물에 부여된 명명성과 실용성의 관례를 벗어나 그것을 영혼을 지닌, 생명이 있는 존재로 다루는 것이며 물활론적으로 상상하는 일이자 다루는 일이다. 또한 삶의 동반자로 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상의 도구적 관계에 저당 잡힌 사물을 자유롭게 풀어내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의미 있는 사물이 태어난다. 사물을 그렇게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예술가를 예술가이게 한다.
그 작은 사물들 중에서도 나는 유독 필기구에 굶주려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무수한 모든 필기구를 탐한다. 죽는 날까지 늙어가면서 지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정말 잘 써지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두른 필기구 하나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서랍 가득히 담겨 있는 것도 모자라 이곳저곳 수북이 쌓여 있다. 몽블랑 만년필과 샤프, 파버카스텔 연필과 볼펜을 유난히 좋아하고 노란색 연필을 사랑한다. 지우개가 달리고 감각적인 색채를 두른, 매끄러운 표면에 비교적 짧은 길이의 파버카스텔 연필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다. 그 자태는 격조 있는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실감나게 증거한다. 연필 한 자루도 이 정도 감각은 돼야 하는 것이다. 연필 다음으로는 역시 만년필이다. 검정과 청색 잉크를 머금은 몽블랑 만년필은 내 메마른 감성을 습성으로 녹인다. 촉촉한 액체성의 잉크가 줄줄 흘러나와 문자로 기재되는 것을 보노라면 그 풍경이 사뭇 경건하기도 하다. 종이의 피부 위를 긁어대는 만년필의 촉 소리는 신경줄을 예민하게 조율하는 긴장감을 준다. 나는 얇은 종이의 단면에 깊이를 내며 긁어대는 소리에 의존해 의식을 떠도는 어떤 문구들을 간절히 삽입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절망스럽다. 단 한 번도 글은 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만년필의 죄가 아니다. 나는 오늘도 마음에 드는 어떤 필기구 하나에 의존해 글을 쓰고 줄을 치고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을 본다.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글꼴을 이루며 흩어지는 의식과 감정을 우울하게 내려다보는 것이다. 손에 쥐는 필기구는 그렇게 무엇인가 그리고 쓰기 위해 내 몸에 밀착된 것이다. 내 연장된 신체들이고 내 안의 것들이 몸 밖으로 외화되기 위해 불가피한 도구들이다. 그러니 이 필기구 없이 나란 존재는 없다. 나는 이 필기구 하나에 의지해 내가 된다.
만년필의 촉소리는 긴장감 줘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