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생명의 노래. 아트블루 제공
남쪽에서 봄날을 만끽하고 돌아와 뉴스를 접하니 하루 간격으로 연이어 아이들이 투신했군요. 만 열세 살의 꽃봉오리 같은 그 애들이 만개해 보지도 못하고 낙화하다니…. 소년은 친구의 끝없는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소녀는 학업 스트레스의 중압감 때문에 유서를 써놓고 뛰어내렸군요. 특히나 소녀는 자살 매뉴얼을 써놓고 그대로 실천했다고 합니다. 시험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습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노트에 그것을 정리해놓은 소녀의 필체와 내용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졌어요. 더군다나 소년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한 목격자의 기사를 보고는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결심했던 소년이 마지막 순간 마음을 돌려 20층 창틀에 매달려 “저기요, 저기요” 하다가 힘이 빠져 결국 추락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며칠 전 동아일보에 실렸던 소년의 형이 독백체로 쓴 자책과 후회의 편지를 보다 저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미안하다’란 말이 16번이나 들어간 부치지 못할 짧은 편지. 저 또한 그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자식 낳아 기른 어미의 심정으로 너무도 가슴이 먹먹하고 절절해서였습니다. 저도 10대 때 바로 밑의 여동생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 동생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애를 잃을 준비를 차마 못하고 그 애의 죽음을 겪게 된 제가 매일 밤 일기에 적던 그 말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었지요. ‘얼마나 무서웠니.’ ‘미안해 미안해….’ 저는 오랫동안 마음을 앓았고,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은 제 어머니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하물며 멀쩡한 얼굴로 학교를 간다고 나갔던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그분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그분들의 인생에 봄은 이제 얼마나 끔찍한 계절일까요.
누가 만 13세의 아이들을 아파트의 15층으로, 20층으로 내몰아 생의 벼랑 끝에 서게 했을까요. 세상은 온통 미친 듯 한꺼번에 피는 봄꽃으로 어지러운데, 정작 사람의 꽃인 이 봄꽃들은 왜 스스로 낙화한 걸까요.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