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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콘디의 인기

입력 | 2012-04-21 03:00:00


콘돌리자 라이스(콘디)의 실물을 2006년 10월 외교통상부 기자회견장에서 처음 보았다. 라이스는 2001년부터 8년 동안 미국을 통치한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전반기 4년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후반기 4년은 국무부 장관으로 활약했다. 1m 거리에서 본 라이스는 잘 깎은 까만 바비 인형 같은 매력과 함께 카리스마를 분출했다. 쥐색 정장에 황금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라이스가 북한에 대한 단호한 견해를 밝힐 때는 눈빛이 강력했다.

▷3세 때 피아노, 발레, 피겨스케이팅에 프랑스어를 배웠다. 27세에 스탠퍼드대 교수가 됐다. 콘디는 한때 부시 대통령의 ‘오피스 커플’로 불렸다. 2004년 11월 부시가 콘디를 국무부 장관에 지명하며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얼굴이다. 그를 통해 미국의 힘, 우아함, 고상함을 볼 것”이라고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의 볼에 입 맞추는 장면에서 ‘사감(私感)’을 감지한 기자들도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지국장 집에서 열린 비공식 모임에서 콘디는 “내가 ‘husb…’(남편을 의미하는 husband의 앞부분)와 이야기 할 때”라고 했다가 급히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할 때”로 정정한 일로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4년 재임기간 중 326일을 외국순방 일정으로 보냈던 미혼녀 콘디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지난해 10월 41년 독재의 비참한 최후를 맞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겐 ‘마이 달링’이었다. 2008년 트리폴리에서 콘디를 만난 카다피는 2억3000만 원어치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를 안겼다. 콘디는 회고록 ‘최고의 영예’에서 “카다피와 저녁식사 도중 리비아 작곡가가 헌정한 ‘백악관의 검은 꽃’이란 음악이 흘러 나왔다”며 “그는 내게 (나로선) 좀 ‘소름끼치는(eerie)’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고 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사실상 결정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콘디가 거론되고 있다. CNN방송이 13∼15일 공화당원 및 보수성향 유권자 4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26%가 콘디를 부통령 후보로 꼽았다. ‘외교안보 무뇌아’란 조롱을 받았던 4년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흑인 지지표를 흡수할 수 있는 카드라는 인식이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