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때 피아노, 발레, 피겨스케이팅에 프랑스어를 배웠다. 27세에 스탠퍼드대 교수가 됐다. 콘디는 한때 부시 대통령의 ‘오피스 커플’로 불렸다. 2004년 11월 부시가 콘디를 국무부 장관에 지명하며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얼굴이다. 그를 통해 미국의 힘, 우아함, 고상함을 볼 것”이라고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의 볼에 입 맞추는 장면에서 ‘사감(私感)’을 감지한 기자들도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지국장 집에서 열린 비공식 모임에서 콘디는 “내가 ‘husb…’(남편을 의미하는 husband의 앞부분)와 이야기 할 때”라고 했다가 급히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할 때”로 정정한 일로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4년 재임기간 중 326일을 외국순방 일정으로 보냈던 미혼녀 콘디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지난해 10월 41년 독재의 비참한 최후를 맞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겐 ‘마이 달링’이었다. 2008년 트리폴리에서 콘디를 만난 카다피는 2억3000만 원어치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를 안겼다. 콘디는 회고록 ‘최고의 영예’에서 “카다피와 저녁식사 도중 리비아 작곡가가 헌정한 ‘백악관의 검은 꽃’이란 음악이 흘러 나왔다”며 “그는 내게 (나로선) 좀 ‘소름끼치는(eerie)’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고 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