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 바다/곽재구 지음/136쪽·8000원·창비
13년 만에 시집 ‘와온 바다’를 펴낸 곽재구 시인. 그는 “와온 마을 가는 길에 핀 하양 노랑 분홍 보라 꽃들이 어질고 착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을 닮았다”면서 “내가 쓸 맨 나중의 시 한 편 또한 그런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창비 제공
‘해는/이곳에 와서 쉰다/전생과 후생/최초의 휴식이다//…//달은 이곳에 와/첫 치마폭을 푼다/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시 ‘와온 바다’ 중)
‘해는/달 속에서 뜨고/달은/해 속에서 뜨고/해는 솟아올라/저무는 달에게/챔파꽃 레이를 걸어주고//달은 솟아올라/저무는 해에게/라마야나 이야기를 들려주네’(시 ‘산티니케탄’ 중)
‘낡을 대로 낡은 그림 가방을 등에 메고/그가 석양 속으로 떠나는 동안/시를 쓰고 살았다는 지상의 내 이력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시 ‘화가’ 중)
‘풀들이/제 몸 끝에/별 하나씩 붙들고/이승의 끝까지 걸어간다/순례자가/오체투지를 멈추고/얼굴을 풀밭 위에 부빈다/풀과 인간이/함께 껴안고/우는 아침’(시 ‘적빈 7’ 전문)
10년 넘게 시집을 내지 못했던 고난한 시업(詩業)의 짐을 인도에서 잠시 내려놓은 시인은 “그들의 맑은 눈망울과 따스한 마음이 없었으면 이 시집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시인이 인도에서 보낸 긴 시간과 상념이 다음과 같은 시로 피어났기에 시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미스티 가게 앞/자전거를 멈춘 연인들은//세월이/잠시 그들 곁에/멈춘 것을 알지 못하지//페달 위에 올려진/푸른 밤의 발 하나//죽은 시인의 언어들이/페달 위에서 가벼운 탄식을 올리는 동안//남은 한발이/지상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와 입맞춤하네’(시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