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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사막도로 과속 잠재우는 美경찰 아날로그식 단속

입력 | 2012-04-24 03:00:00


한 시간 동안 달려도 자동차 몇 대 마주치지 못하는 미국의 사막 도로. 제한속도는 다른 지역보다 시속 10마일 높은 75마일(약 120km)에 경찰차 역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곳에서 미국인들은 어느 정도로 달릴까요. 평소에는 경찰이 무서워서 못 달린다지만 감시가 없는 해방구 같은 곳에선 본성이 드러나지 않을까요.

최근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캘리포니아 주 등 교통량이 적은 미국 서부지역을 3000km 정도 여행하면서 이런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미국은 과속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강력하고 벌금도 높아서 한 번의 과속으로 300달러(약 34만 원) 정도 지출하는 것은 흔하고 심하면 1000달러 가까이 벌금이 나온 경우도 봤습니다. 게다가 보험료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미국 운전자들이 과속을 하는 비율은 대단히 낮습니다.

하지만 감시가 없고 지평선으로 곧게 이어진 고속도로라면 미국 운전자들도 제법 과속을 하리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제한속도를 10마일 이상 넘기는 운전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미국 경찰은 제한속도에서 시속 5∼10마일 초과는 눈감아줍니다.

이유는 역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경찰과 무거운 벌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일반 차량으로 위장한 경찰차도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눈에 경찰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 수천 대의 과속 단속 카메라가 깔려 있는 한국 고속도로에선 시속 160km(약 100마일) 이상 과속하는 차량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특히 이동식 영상단속 장치를 사용하기 힘든 야간에는 과속차량의 비율이 훨씬 높아집니다. 경찰이 직접 과속 차량을 따라가서 세우는 방식의 단속을 하지 않는 데다, 고정식 과속단속 카메라는 이미 내비게이션에 모두 노출돼 있어서 카메라 앞에서만 잠시 속도를 줄이면 되기 때문이죠.

이에 비해 미국 경찰은 영상 단속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99% 경찰이 직접 단속을 합니다. 이런 아날로그식 단속이 비효율적인 듯하지만 과속을 줄이는 효과는 탁월합니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과속으로 붙잡히면 요란한 경광등과 상향등 세례를 받으며 신분증을 조회당하고 주의사항도 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커서 스스로 범법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해줍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디지털화한 과속단속은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에 찍히고, 속도위반 통지서가 날아오면 인터넷으로도 벌금을 납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것이 벌금 징수에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교통사고의 주범인 과속을 줄이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너무 효율과 비용의 측면에 매몰돼 공공부문 서비스가 존재하는 이유를 망각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노스헤이번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