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시아인-非SKY 의식한 적 없다”GE 감사팀 입사 6년 만에 한국인 첫 임원급 승진 조의경씨
입사 6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감사팀(CAS) 임원으로 승진 한 조의경 이사(시니어 감사 매니저)는 “현재의 능력에 안주하면 1년 뒤에는 남보다 뒤 처지는 게 GE의 성과주의 문화”라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GE는 올해 포브스 선정 세계 2000대 기업 중 3위에 오른 134년 전통의 미국 대표 기업이다. CAS는 직원 20만 명의 GE의 전 세계 사업장을 총괄 감사하는 핵심 부서이며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배출한 GE 내의 공인된 ‘패스트 트랙(고속 승진)’ 코스다. 미국인 직원도 좀처럼 들어가기 힘든 이 부서의 임원급이 된 한국인은 조 이사가 처음이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자, 아시아인, 비(非)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고민한 적이 없다”며 “그걸 의식하는 순간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중앙일간지 기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기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 시절 학내 밴드 ‘에밀레’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고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홀로 중국 여행을 떠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경영 학술동아리 활동을 하며 기업경영에도 눈을 떴다. 초중고교 때는 삼성의 미국 주재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미국생활을 경험했다.
평탄했던 그의 인생은 2005년 GE코리아의 재무전문가과정(FMP)에 지원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조 씨는 “‘소수 인력을 뽑아 많은 투자를 하는 회사’라는 동아리 선배의 권유로 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합격했다”며 “대학 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마음가짐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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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디면 무한 성장한다”
2년간의 FMP 과정이 끝나고 상위 10∼15%가 배치되는 미국 본사의 CAS에 배속됐다. 새로운 시련의 시작이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클라이언트(감사 대상 부서 직원)를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정리하면 늘 오전 1, 2시였다. 주말에는 놓친 업무를 챙기고 다음 주 할 일의 목록을 만드느라 바빴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E캐피털의 감사조직을 재설계하는 미션이 떨어졌다. 호주법인에 투입된 그는 업무를 500개로 나누고 과거 감사실적을 대조해 ‘감사의 사각지대’를 찾아낸 뒤 대안을 제시했다. 이 공로로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공로상을 탔다. 2010년 감사 매니저로, 지난해 시니어 감사 매니저로 승진했다.
○ “나를 버티게 한 힘은 피드백”
조 이사는 GE식 인재육성의 요체를 ‘끊임없는 투자’와 ‘무한 피드백’이라고 말한다. 상사는 물론이고 동료로부터 매일 칭찬과 비판이 쏟아진다. 피드백을 따라 개선점을 찾다 보면 신입사원도 단기간에 노련한 간부로 단련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홀로 CAS 1년차를 마칠 무렵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겹치며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를 10장짜리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만들어 한국에 있는 부친에게 e메일로 보내고 전화로 1시간 동안 설득했다. 부친은 단호했다. “시련 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런 설득능력도 회사에서 배운 것 아니냐”고 그를 다그쳤다. 그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멘토가 되고 싶다”며 “내가 직장을 나갔을 때 나를 대체할 수 있는 후배 3명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 “감사는 처벌이 아닌 개선이 목적”
조 이사는 2008년부터 CAS에서 일하면서 15개국을 돌며 항공 마일리지만 ‘하프 밀리언(50만 마일리지)’을 쌓았다. 세계 각국의 팀원들이 맡고 있는 감사업무를 챙기느라 2주에 한 번꼴로 국가를 옮겨 다닌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 ‘양보할 수 없는 무결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CAS의 직원은 회사 내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료를 요구하고 면담을 청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도 직접 CAS 연차 콘퍼런스에 참석해 “당신들이 있어 내가 발을 뻗고 잔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라”고 격려할 정도로 힘을 실어준다.
조 이사는 “GE의 감사는 직원의 무능보다 윤리적 문제를 찾아 개선하는 게 목적”이라며 “문제를 감추면 누구든 처벌받지만 공개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면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