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폭력으로 2년간 시달리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정신과에 입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가해학생을 전학 보낼 수 없고 중학교도 같은 곳에 간다고 해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인데, 이해를 못하는지 30일 현장체험학습에 나오라고도 합니다. 가해학생 부모 앞에서 죽는 게 복수인 것 같아 휘발유를 샀는데….”
정부가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19일, 서울 강남의 모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주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학교가 폭력사건을 방치해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다”고 울먹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 “왜 피해자가 피해야 하나요”
지난해 6월에는 미로장애 판정을 받았다. 계속 극심한 두통을 호소해 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사건 당시의 충격으로 오른쪽 평형기관 신경이 손상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A 군은 신경안정제가 든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고통이었다. 치료비를 요구한 적이 없는데 “A 군 부모가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너네도 쟤랑 놀지 마. 다치면 보상해줘야 해”라고 C 군이 말하고 다니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났다. 흘겨보거나 욕을 하고, 다리를 발로 차고 지나갔다.
부반장까지 맡을 정도로 활달했던 A 군은 점점 내성적으로 변했다. 결국 지난달 27일에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병동(주치의 신의진)에 입원했다. 심리상담을 통해 자살충동이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은 뒤였다. 5학년 때는 C 군과 다른 층이었지만 6학년은 모두 한 층에 있어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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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군의 부모는 재차 학교 측에 가해학생을 전학시키고 중학교는 같은 곳에 배치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한결같이 안 된다고 했다.
이 학교의 교장은 “서로 치고받고 싸운 게 아니고 장난치다 이에 금이 간 거다. 이후 다른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C 군을 전학시키기는 어렵다. 다만 중학교 배치 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학교장의 의견을 쓰면 A 군이 다른 중학교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가해학생의 어머니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기사를 쓸 게 그렇게 없냐”며 거칠게 얘기했다.
○ 진상을 숨기면서 피해자를 두 번 울려
그러나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아직 울고 있다. 학교가 여전히 학교폭력을 숨기는 데 급급하고 적극 대처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A 군의 어머니는 “학교만 믿고 기다린 내가 바보 같다. 이후에 서울시교육청과 강남교육지원청에 민원을 넣어도 서로 미루기에 급급했다. 학교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도 열지 않아 지난해 10월 감사원에 민원을 넣었다. 한 달 뒤에 열리긴 했지만 가해학생을 떼어놓는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피해학생이 다른 중학교로 가야 하는 거냐”며 울분을 토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아버지 이모 씨도 “지난해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하면서 너무 답답했다. 교육청은 신고를 받고 한 달이 넘도록 학교에 안 가봤다. 피해자가 누구에게 조언 받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을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학교 교장은 “학교폭력 결과가 공개되면서 성실하게 응한 학교가 오히려 폭력 학교로 낙인찍히니 다음부터 차라리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나올 것 같아 우려된다. 이런 인식이 있다면 피해자는 영영 보호받지 못 한다”고 말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피해자 부모들이 사건 초기가 아니라 상황이 너무 악화됐을 때 협의회를 찾아와 안타깝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학교와 부모들이 모두 모른다. 대응법을 널리 알리고 상담소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