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콜라소녀’ ★★★★
알면서도 속아주지만 또 속아준 걸 몰라줘서 슬픈 우리네 가족의 초상을 웃음 두 스푼, 눈물 두 스푼으로 담아 낸 연극 ‘콜라소녀’. 서울연극제 제공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콜라소녀’의 매력은 제목과 내용의 이질감에서 빚어진다. 연극 속에서 잠깐 언급되는 콜라는 상큼한 청량음료의 대명사가 아니다. 극중 할머니(김용선)의 환갑잔치가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을 때의 추억을 환기하는 손녀(정세라)의 대사 속에서 이렇게 등장한다.
“그날 콜라 많이 마셔서 트림 날 때마다 얼마나 울었다고. 콜라 마시고 트림하면 코끝이 찡해서 눈물나잖아.”
연극 속에서 명희로 호명되는 콜라소녀는 관객에겐 미스터리에 가깝다. 배우들이 쉬쉬하며 나누는 대화로 짐작만 가능한 그는 떡장수 하던 할머니가 직접 낳고 기른 삼형제와 달리 데려다 기른 의붓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가족들 먹을 나물을 캐오고 세 오빠들에게 손수 조끼를 짜준 ‘똑순이’다. 커서는 조카들 학비와 용돈을 대다가 병으로 요절하면서 자신의 보험금으로 어머니가 자식농사 짓기 위해 판 땅을 되사라는 유언을 남긴 ‘천사’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명희는 금기의 대상이다. 외동딸을 잃은 상실감에 할머니가 넋을 놓을까봐 해외유학 중이라는 ‘연극’을 수년째 펼쳐와서다. 그런데 시골서 할머니를 묵묵히 모시고 살던 장남(장용철)의 환갑을 빌미로 서울서 내려온 둘째와 셋째 부부가 찾아오면서 그 연극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한다. 명희의 보험금으로 산 땅에 개발붐이 밀어닥치자 형제들이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풀어놓으며 그 땅을 팔 것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연극 속 가족은 고스란히 우리네 가족이다. 가족이니까 한편으론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참말인 양 속아주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걸 몰라주는 게 너무도 속상한 우리들 말이다.
큰아들 내외로 분한 장용철 남기애 씨를 필두로 한 삼형제 부부는 이를 능청스러운 연기로 그려낸다. 그것은 관객의 반응보다 반 박자 빠른 농담과 한 박자 느린 설움을 밀고 당기며 추는, 흥겨우면서도 슬픈 왈츠에 가깝다.
기발한 구성의 ‘가정식 백반 먹는 법’으로 호평을 받은 김숙종 작가와 최용훈 연출가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17일부터 시작한 2012 서울연극제 참가작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