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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LP가 흐르는 오사카 봄밤

입력 | 2012-04-24 03:00:00

4월 22일 일요일. 비 내리는 오사카의 봄. 타임봄, 킹콩,
그리고 낙원. 트랙#6 Corinne Bailey Rae ‘Put Your Records On’




창밖으로 오사카 성의 야경이 보인다. 동방신기 일본 투어 콘서트 취재차 온 이곳 오사카에 봄비가 거세다.

김포공항을 떠나 일본에 도착한 오후, 호텔에 여장을 푸는 둥 마는 둥 번화가 신사이바시(心齋橋)로 뛰쳐나갔다. 룸메이트로 배정된 A사 기자 B 선배(그도 싱글이다!)와 나의 무언가에 푹 빠지는 오타쿠 기질은 대한해협 건너에서 의기투합했고, 씻기도 마다한 채 중고음반점 순례에 나선 거다.

우산 받쳐 들고 B 선배의 뒤꽁무니를 비 맞은 포메라니안처럼 따랐다. ‘킹콩 레코드’를 찾던 중 눈에 띈 ‘타임봄 레코드’에 일단 쳐들어갔다. 건물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에 300m²쯤 되는 공간이 나왔다. 신나는 로커빌리풍의 음악이 눅눅한 실내를 건조시키고 있었다.

1990년에 생긴 타임봄은 1950, 60년대 리듬앤드블루스(R&B)와 솔부터, 로큰롤, 사이키델릭, 서프 뮤직, 펑크와 뉴웨이브, 하드코어와 최신 헤비메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CD와 LP를 외국 것, 일본 것, 새것, 헌것 할 것 없이 팔고 있다. 일본의 실험적인 록밴드 보리스의 희귀 음반을 세일가 1890엔에 ‘득템’했다.

타임봄을 나와 한 골목 꺾으니 킹콩 레코드(사진)가 나타난다. 타임봄보다 더 넓은 반지하 공간. 광맥 더듬듯 음반 숲을 뒤지기 시작한 나와 B 선배의 눈동자는 다크서클 위로 빛나다 마주치곤 했다. 시간은 우주공간처럼 느리게 먼지 속을 유영하다 시계를 보는 순간 광속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명연주자들이 실제 동굴에 들어가 녹음한 음반과 피그미족 다성 음악을 담은 CD를 계산대에 올려놨다. B 선배의 손에도 옛 블루스와 록 뮤지션들의 LP 10여 장이 들려 있었다.

이곳 신사이바시 서쪽 몇 블록에만 13개의 군소 음반점이 밀집해 있다. 가게 벽과 카운터마다 지역 뮤지션들의 공연 소식과 포스터가 빼곡했다. B 선배가 충혈된 눈을 들며 말했다. “여긴 오타쿠의 천국이야.”

소란한 헤비메탈이 쩌렁쩌렁 울리는 실내에서 평화롭게 중고 팝 LP를 고르던 노부부도, 강한 비트의 일본 힙합을 배경으로 해맑게 뛰어다니던 남자 아이도 음파 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킹콩 레코드의 공식 엽서에 박힌 문구는 ‘음악의 낙원(音樂の樂園)’. 캐릭터 카드 모으는 꼬마처럼 거기서 시간을 잃고 넋을 놓은 어른들은 약간 한심해 보이고 조금 행복해 보였다. 거대도시 한복판에 소박한 낙원이 엎드려 있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