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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허승호]스페인 위기 ‘강건너 불’ 아니다

입력 | 2012-04-26 03:00:00


허승호 논설위원

스페인은 지난달 실업률이 24%다. 청년실업률은 50%로 절반이 논다. 10년 만기 스페인 국채의 발행금리는 6%대다. 한국에서 주택대출 기준금리가 4∼5%니 국채라 하기엔 참 민망한 숫자다. 연말까지 1800억 유로어치 국채 만기가 돌아오지만 상환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받는다. 이는 채권의 부도위험을 사고파는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에 반영돼 최근 사상 최고치인 523bp(1bp=0.01%)를 기록했다.

금융도 재정도 거품은 결국 무너져


스페인의 국가재정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까지만 해도 튼튼한 편이었다. 대신 부동산거품이 잔뜩 끼어 저축은행이 부실했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은행 부도를 막느라 돈을 쏟아 붓다 보니 3년 반 만에 재정위기 국가가 돼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재정이 방만해 나라꼴이 망가진 그리스와는 불행의 시작이 다르다.

정부 손에 있는 거시경제 조절 레버는 셋뿐이다. 재정 금리 환율이다. 효력은 환율-금리-재정 순으로 좋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재정이 소총이라면 금리는 대포, 환율은 핵폭탄”이라고 비유해 말하곤 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환율과 금리정책을 못 쓴다. 유로화를 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환율-금리가 국가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이다. 유일한 정책수단은 재정이다. 소총 같은 재정투입으로 효과를 내려면 물량작전밖에 없다. 그래서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다가 재정위기를 맞았다.

금융위기 발생 후 기자는 ‘재정거품으로 금융거품 다스리기’라는 칼럼을 통해 “각국의 대응이라는 것이 금융거품 붕괴로 인한 쇼크를 재정거품으로 달래는, 그야말로 단기처방이다. 남용하면 재앙이 온다. 반드시 금융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자에게 미래를 보는 무슨 혜안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경제교과서가 가르치는 내용이다.

마땅한 해법도 없다. 금리-환율정책을 못 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며 이제 재정도 안 좋아 고강도 긴축을 하는 판이다. 침체는 점점 깊어진다. 1990년대 이후 지자체 선거 때마다 ‘퍼주기 공약경쟁’으로 오랫동안 곪아왔던 지방재정 문제까지 가세했다. 구제도 쉽지 않다. 스페인은 경제규모가 그리스의 5배로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무너지면 유럽이 못 견딘다. 겨우 회복세로 돌아선 세계경제도 다시 수렁에 빠진다.

더 큰 걱정은 유럽은 이런 일이 반복되는 구조라는 데 있다. 유로라는 완전고정환율제를 채택함에 따라 혜택 보는 나라는 산업경쟁력이 있는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이다. 반면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는 경상적자가 쌓이고 경기가 가라앉으며 이를 중화하는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누적된다. PIGS 중 스페인 외에는 다 구제금융을 받았고 이런 나라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퍼주기 복지’ 반드시 대가 치른다


유로 존에서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나라는 독일 프랑스 정도이지만 이들 국민의 정서는 “우리가 받은 혜택을 나누자”가 아니라 “우리가 왜 베짱이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다. 큰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스페인 상황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세계의 금융 및 실물경제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충격이 길 것이다. 기업과 가계는 빚을 줄이고 유럽시장 편중을 피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와 은행은 유럽계 은행의 국내 투자자금 회수에 대비해야 한다. 유럽자금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투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둘째, 재정 건전성이다. 한국은 아직은 괜찮은 듯하지만 반드시 나빠진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다 4·11총선을 시작으로 정치권의 퍼주기 경쟁에 제대로 불이 붙은 느낌이다. 스페인 상황이 ‘강 건너 불’이 아닌 또 하나의 이유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