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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집권 5년차 증후군

입력 | 2012-04-26 03:00:00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이 경북 문경새재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의원은 “문경새재는 한반도 대운하의 계기가 되는 어려운 고지”라며 행사장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선 승리 직후인 데다 이 의원의 위상 때문인지 출판기념회에는 전국에서 1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사석에서 “이재오가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문경 사건은 이명박 정권을 만든 두 축이 갈라지는 분수령이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영포(영일·포항 출신)라인의 원로그룹에 속한다. 최 전 위원장은 집권 초 지인들을 만나 “이제 젊은 친구들은 뒤로 빠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소장파 그룹은 “원로들이 전면에 나서서 뭘 챙기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그후 친이(친이명박) 원로들에 대한 소장파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최 전 위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소장파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측근비리는 없다”고 호언하던 이명박 정부도 마지막 5년차에 권력형 측근비리가 터져 나오는 전철(前轍)을 어김없이 밟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5년차엔 대통령 아들이 연루된 비리로 나라가 들끓었다. 노무현 정부에선 친노(친노무현) 핵심인 정윤재 씨의 수뢰 사건이 5년차를 장식했다. 이 무렵이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여권 주류 진영의 해묵은 갈등도 수면으로 떠오른다. 김영삼 정부 시절 차남 현철 씨와 민주계가 정면충돌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부산파’가 장악한 청와대가 당시 여당과 갈라서야 했다. 권력 내부의 속살이 드러나는 집권 5년차 증후군이다.

▷이재오 의원은 어제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 있을수록 비리와 부패는 더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검찰의 조사 대상인 최 전 위원장과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상득 의원은 그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재오 김문수가 초선 의원이었을 때 통제가 안 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고자질 느낌이 난다. 권력이 저물 때는 이런 모습도 흔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발버둥 같아 안쓰럽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