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 북한인권협의회 오타와 지부장 알랭 디온 씨
알랭 디온 씨
그러자 몇몇 질문이 나왔다. “탈북자들이 영어를 배우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캐나다나 미국에 와서 살 수 있지 않느냐”에서부터 “탈북자들이 중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탈북자인 줄 알고 체포하느냐”는 제법 수준급 질문도 나왔다. 영문으로 번역된 탈북자 수기와 데일리NK 같은 북한 관련 자료를 매일 저녁 열심히 읽고 있는 디온 씨는 중국 공안의 탈북자 체포에 대해 아는 대로 답했다. 그러자 지루함을 못 참겠다는 듯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디온 씨는 “대다수 캐나다 사람은 북한 인권 상황을 모르거나 관심이 있다 해도 기초적인 수준”이라며 “비정하거나 무식해서가 아니라 다만 북한에 대해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시리아 정부의 민간인 학살이나 과거 르완다의 인종학살 참상은 TV만 켜면 나오지만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김정일이 죽어야 뉴스가 된다. 디온 씨는 북한 핵과 지도체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현재 수많은 북한 주민이 처한 상황을 널리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북한 인권에 대한 캐나다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 그의 목표다.
○ 낮에는 국세청 직원, 밤엔 인권운동가
낮에는 캐나다 국세청 직원으로, 밤에는 탈북자인권운동가로 일하는 알랭 디온 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 오타와 지부장. 지난달 오타와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송환 금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알랭 디온 씨 제공
얼마 전에는 오타와대 학생회와 연락해 대학 강당에서 영화 ‘크로싱’을 상영하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학생과 탈북자들이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크로싱’은 디온 씨가 가장 감명 깊게 본 북한을 주제로 한 영화였다. 그는 2010년 이 영화를 토론토에서 보고 울고 말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 대한 책을 읽고 자료를 분석하는 데 그쳤지만 영화를 본 뒤 북한인권협의회를 찾아가 돕고 싶다고 자원했다. 이경복 북한인권협의회 회장은 그에게 오타와 지부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2007년 설립된 북한인권협의회는 토론토에 본부를 두고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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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앞으로 캐나다 대학을 순례하며 ‘크로싱’을 상영할 계획이다. 북한 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영화나 책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슈를 부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상점이나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영화 안내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 그의 퇴근 후 일과다. 오타와 한인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는 대신 포스터를 몇 장씩 나눠 주고 왕래가 많은 곳에 붙여 달라고 부탁한다.
○ 年 소득 20% 탈북자 위해 사용
디온 씨는 1996∼2002년 한국에서 6년 동안 살았다. 대학 졸업 후 동양을 경험하고 싶어 한국을 갈까, 일본을 갈까 고민하다 한국을 택했다. 김포공항을 거쳐 친구가 있는 부산에 간 뒤 목적지를 찾다가 무작정 시외버스에 올랐는데 전북 고창으로 가는 버스였다. 그는 고창에 체류하는 유일한 외국인으로 1년 동안 영어학원 강사로 일했다. 그곳에서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며 개인보다 전체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전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들이 모여 김장 담그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돌아가며 구슬픈 노래를 한 가락씩 부르셨어요. 무슨 노래냐고 여쭈니 자식을 징용으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픈 심정을 그린 노래라고 하더군요. 가슴이 찡했어요.”
그는 “나중에 북한인권운동을 하게 되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풍습인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을 북한은 그저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게 되었다”며 “북한 가정의 방마다 걸려 있는 김일성 일가의 사진 밑에서 수많은 북한 주민이 ‘아버지 수령님’에게 충성하기 위해 노예처럼 살아가는 현실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중국대사관 철문을 통해 대사관 직원에게 탈북자 송환 금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는 모습.
디온 씨는 북한 관련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아예 휴가를 내고 참석한다. 캐나다 공무원들은 연 24일의 유급휴가를 자신의 일정에 맞춰 사용할 수 있다. 오타와가 캐나다 수도이니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한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올 하반기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결의안을 추진하기 위해 토론토와 오타와, 몬트리올 교민들을 중심으로 2000명 정도의 서명을 모았다. 1000명을 더 모아 친한파 의원에게 결의안 발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신숙자 모녀 송환 결의안은 최근 상임위를 통과했으며 조만간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4년 전 집을 산 그는 방 4개 중 3개를 탈북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할 생각이었지만 오타와에서는 아직까지 탈북자들을 찾을 수 없었다. 캐나다로 건너온 탈북자들은 대부분 한인 인구가 많은 토론토에 모여 산다. 인구가 3000명 정도로 적은 오타와에서 탈북자를 만나기는 힘든 일. 그는 현재 방을 세놓고 여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활동비를 충당하고 있다. 월급을 합쳐 연소득 10만 달러 중 2만 달러 (약 2280만 원)정도를 북한 인권 활동에 쓰고 있다.
○ “북한 문제는 인간의 문제”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며 그를 별나게 보는 사람도 많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그가 시위에 참여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 말리기에 바쁘다. 그는 주변에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결혼을 안 해 할 일이 별로 없다”고 농을 던진 뒤 본론으로 들어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나치 강제수용소의 인권 유린에 흥분하며 수십 년간 조사를 하고 관련자를 찾아 응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 저편에서 그에 버금가는 참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친구들이 ‘다른 곳도 많은데 왜 북한에 매달리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러면 너는 르완다를 맡아라. 나는 북한을 맡겠다’고 말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과 인류의 문제라고 봅니다.”
북한 인권 활동을 하면서 한인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지역 한인회는 명절 때마다 그를 초대한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그는 오타와 한인 음식점의 단골이기도 하다. 외로울 때도 있다. 캐나다에서 북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는 한인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같은 캐나다인이 더 열심히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망이 있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북한 얘기를 꺼낼 때마다 친구들 얼굴에서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지 않게 되는 것.”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