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서·동 시집’ 완역서 펴낸 전영애 서울대 교수, 작은 ‘글쓰기 공동체’ 조성 나서
《 “멀리서 이 비를 뚫고 왔는데… 밥은 해먹여야지.”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 21일. 경기 여주군 강천면 걸은리의 낡은 한옥에 들어서자 그는 부랴부랴 밥부터 차렸다. 묵은 된장을 보글보글 끓여내고 오이와 봄동을 숭숭 썰어 솥밥과 함께 내온 손은 시골 아낙의 손처럼 투박했다. 》
전영애 교수의 한옥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정자 ‘시정(詩亭)’. 이 옆에 읽고 쓰는 사람들의공동체 ‘여백서원’을 만들 생각이다.
시인이기도 한 전 교수는 지난해 6월 동양인 최초로 독일 바이마르괴테학회가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받았다. 최근에는 ‘괴테 서·동(西·東) 시집’의 시편과 산문편을 모두 담은 완역서(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를 출간했다. 헨드릭 비루스 독일 브레멘야콥스대 교수와 공저로 연구서 ‘괴테 서·동 시집 연구’도 펴냈다. ‘서·동 시집’은 괴테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시집에서 영감을 얻어 쓴 239편의 시와 오리엔트론(論)으로 구성됐다. 서양과 동양의 화합을 상징하는 제목처럼 모든 인류의 문학을 실현한 괴테 말년의 역작이다.
“19세기 초 작품인데 당시 그 어떤 문학에서도 이토록 열린 시각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괴테의 열린 세계관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해요. 괴테는 낯선 것을 낯설게 둘 뿐 익숙한 곳으로 억지로 끌어오지 않았어요. 그럼으로써 문화는 풍요로워지죠.”
전영애 교수는 강의가 없을 땐 경기 여주군의 낡은 한옥에서 글을 쓰거나 밭일을 한다. 아무 때나 제자와 지인들이 찾아와 머문다. 부엌 냉장고에 붙어 있는 자전거열쇠 비밀번호 메모지가 집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보여준다. 여주=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옥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엔 자그마한 땅을 마련해 한 칸짜리 정자를 짓고 ‘시정(詩亭)’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가로 2.1m, 세로 2.1m(각각 7자) 크기의 실내에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전부지만 그 이름처럼 전 교수에겐 시를 짓는 우주다. 읽고 쓸 공간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을 위해 2년 전 작고한 부친의 호를 딴 ‘여백서원(如白書院)’을 이곳에 세울 생각이다. 꼭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땅 2.1m²를 제공해 스스로 집짓게 한다는 계획이다.
전 교수는 “삭막한 시대에 주춧돌을 놓고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뿌듯함을 공유하고 싶다”며 빗속에서도 소나무 모종을 심기 위해 고무장화를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