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김치’ 불편한 진실, 저염 김장-퓨전 요리로 뛰어넘자
가볍게 씻은 김치와 각종 야채 치즈 등을 이용해 만든 김치 케사디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인기 있는 김치요리로 알려져 있다. 조리·사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충남의 한 김치공장 사장 B 씨(53)는 요즘 큰 고민에 빠졌다. 모든 재료를 국내산만을 고집하고 깨끗한 제조 환경을 갖춰 ‘친환경김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배추를 절일 때 쓰는 소금 양이 늘 마음에 걸렸다. ‘저염(低鹽) 김치’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는 게 그의 꿈. 1990년대 2.5%였던 김치 염도를 2.0%까지 낮췄지만 발효와 맛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1.6%까지 낮추는 게 그의 목표. 하지만 수차례 실험 결과 절임 발효 맛은 예전 같지 않았다. ‘0.4%포인트의 비밀’을 푸는 게 그의 과제다.
국내에서는 요즘 저염 김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치 고장’이라 자처하는 광주는 최근 식품박람회에 이를 내놓았고 서울시도 저염 김치 요리교실을 연다.
김치, 저염만 이뤄진다면
최근 한 음식 파워 블로거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짜고 매운 것(김치)을 외국에 수출하려 하니 얼마나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이냐. 고추장 된장도 마찬가지다. 난 음식점에서도 김치를 물로 씻어 먹는다’라는 글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는 순식간에 항의성 글로 넘쳤다. 그는 ‘나트륨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전제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치를 끔찍이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된 사례다. 얼마나 김치를 즐기면 외국에선 한국 남자를 ‘김치보이’라 부를까. 외화로 발행되는 국내 채권은 ‘김치본드’라 한다. 영미권에서는 사진 촬영 때 ‘치즈’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라 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김치 소비량은 123만8000t(2조3321억 원). 원재료 생산과 유통, 포장과 가공, 보관 등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방대하다. 국민 1인당 연간 김치 소비량도 28kg(2009년 기준)으로 쌀 다음이다.
미국의 건강잡지 ‘헬스’가 김치를 스페인의 올리브유, 그리스 요구르트, 인도 렌즈콩(말린 콩 종류), 일본 콩 식품과 함께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도 높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하루 평균 먹는 나트륨(4800mg) 중 25∼30%는 김치에서 충당한다. 김치가 고나트륨 식단의 주범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높은 기회비용, 즉 김치의 효능 때문에 이를 드러내놓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퓨전 김치요리를
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김치를 담그는 가구 수는 2001년 68.5%에서 2010년에는 54.5%로 감소했다. 그 대신 국내 시판 김치 시장 규모는 매년 10% 정도씩 성장하고 있다. 우리의 식탁에서 ‘가정표’가 아닌 ‘공장표’ 김치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이 저염 김치를 선호할 경우 사회 전반도 저염 김치로 변해갈 것이다.
먹는 방법도 달리할 수 있다. 이현규 한양대 교수(식품영양학과)는 “발효된 김치에는 각종 양념의 좋은 성분이 배어 있어 살짝 씻는다면 맛과 성분은 유지되되 저염 식단을 실천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삼겹살을 구워 먹은 팬에 김치와 밥을 함께 볶아 먹는 식단도 경계 대상이다.
이기진 기자·한중양식조리기능사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