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의 신화나 설화, 전래동화에서 뱀은 인간을 해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성경에서 뱀은 인간을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한 ‘사탄’이었다. 거의 모든 언어권에서 ‘뱀’은 음흉 사악 냉혹 교활 배신 등의 단어와 어울려 관용구를 이루거나 그런 뉘앙스로 쓰인다. 뱀이나 뱀을 닮은 신을 숭배하는 민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대개 뱀의 마적(魔的) 능력이 강조된다.
▷뱀은 무섭다. 둘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검은 혀는 혐오스러우며 기는 모습은 징그럽다. ‘쉿’ 하는 소리도 섬뜩하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단지 뱀이 지닌 독의 위험성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지상에 포유류의 최초 조상이 나타난 것은 2억 년 이상 됐지만 65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할 때까지는 늘 파충류에 짓눌려 살아왔다. 뱀 같은 파충류에 워낙 오래 당하며 살다 보니 포유류 뇌의 깊은 곳에 파충류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각인됐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포유류는 파충류 포식자를 피해 주로 야간에 활동했기 때문에 몸집은 쥐 이상 커지지 못하다가 공룡 멸종 이후에야 커졌다. 본격적인 ‘포유류 시대’가 열리면서 포유류의 종(種)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