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열린 테마콘서트는 ‘세 분의 어머니’ 덕택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작년 겨울 선종하신 박기주 수녀님은 내가 다녔던 성모초등학교의 교장 수녀님이었다. 20여 년간 학교장으로 지내면서 헌신과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다.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기억하시고, 성인이 된 후에도 졸업생과 그 자녀까지 떠올리며 매일 기도해 주셨다. 대전에 성모학교를 설립하신 1966년에는 당시 학교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스팀난방 시설과 급식시설을 갖추고, 어린 학생들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럼에도 학교 내에 상주하는 교장 수녀님과 다른 수녀님들은 20년 넘게 수녀원에 단 하루도 난방을 켜지 않고 지내셨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겨울이면 병원에서 얻어온 빈 링거액 병에 뜨거운 물을 넣어 안고 주무시다 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박 수녀님은 돌아가시기 전 병환으로 편찮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힘차게 끊임없이 일하는 밝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 박 수녀님께 전화를 드리면 바다와 같은 너그러움으로 나의 영혼을 꼬옥 안아주시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시는 모습에서 살아있는 성인을 만난 듯했다. 한없이 겸손하고 검소하신 위대한 분을 나의 인격 형성기인 초등학교 시절 뵙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숙명여대 총동문회 회장을 지낸 문계 회장님을 처음 뵌 것은 내가 음대에서 교편을 잡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작고 가냘픈 할머니 한 분이 연주를 부탁하려고 찾아오셨는데 당신의 취미는 ‘흔하디 흔한 음악감상’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의 음악적 취향과 감식의 귀를 시험하셨는데, 19세기 말 주옥같은 연주를 했으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대해 물어보셨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도 20세기 초 황금기 연주자들이었던지라 그 시대 연주자들을 제법 알고 있던 나에게 흡족해하셨다. 보석 같은 귀한 음반을 5만여 장이나 보유하고 계시던 문 회장님은 내가 테마콘서트를 준비할 때마다 그 음반들을 빌려주셨다. 내가 연주할 곡에 관해 바이올린 연주뿐만 아니라 성악, 실내악 그리고 재즈와 팝 장르를 아울러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음색의 맛을 내는지 듣고 공부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내가 가장 의지하는 분은 나의 어머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리도 내게 엄하셨던 것은 딸의 예민함과 여린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기 때문일까. 지금은 지혜가 가득한 말씀과 끝없는 사랑으로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강한 믿음과 안정을 주신다. 요즘도 무대에 서면 객석 어딘가에 앉아 딸의 연주를 차마 보지도 못한 채 연주 내내 고개 숙여 기도해 주신다. 해외 연주가 있을 땐 현지 시간에 맞춰 새벽 3시라도 일어나 기도로써 어마어마한 사랑과 에너지를 보내주신다. 많은 연주를 했음에도 무대에 설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에게 어머니는 “아무 걱정 말거라. 엄마가 기도로 철통같이 지켜줄 테니 엄마만 믿어”라고 말씀해주시는 어머니께 가슴이 시리도록 감사한다. 늘 그래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지켜주기를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유시연 바이올리니스트·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