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독일의 주요 관계자들이 전범 혐의로 처벌된 적은 있지만 전직 국가 정상이 국제재판소에서 형사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2007년 6월 첫 재판이 시작된 지 5년 만이다. ‘발칸의 도살자’로 악명을 떨쳤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1999년 유고특별법정(ICTY)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2006년 감옥에서 사망해 판결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리처드 루식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테일러 전 대통령은 다이아몬드를 받고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했으며 반군이 저지른 모든 반인륜적 범죄와 전쟁 범죄를 교사, 선동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했다. 테일러는 테러행위, 살인, 강간, 여성 성노예화, 아동 강제 징집 등 총 11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어 “테일러가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학살과 강간 등을 직접 명령했다는 일부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5월 16일 형 선고와 관련된 청문회를 열고 5월 30일 형량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짙은 감색 양복을 입은 테일러는 2시간 넘게 진행된 판결문 낭독을 무표정하게 들었다. 영국 외교부 관계자는 “테일러가 영국에서 징역형을 살 것으로 보인다”며 “형이 확정되면 수감 교도소가 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네덜란드는 영국과 수감협정을 맺고 있다.
이날 테일러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에서는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고 AFP가 전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