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오룡 지음/344쪽·1만9800원·다우출판
전남 여수 신항 앞바다에 조성된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바다 전시장 ‘빅오’. 가운데가 비어 있는 원형 구조물 ‘디오’에 물을 뿌려 스크린을 만들고 레이저를 쏘아 이미지를 보여주는 쇼를 펼쳐낼 예정이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 제공
한국 최초의 세계박람회였던 1993년 대전엑스포는 많은 이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이 있는 집마다 대전엑스포 공식 마스코트인 ‘꿈돌이’ 저금통에 동전을 모았다. ‘도우미’라는 단어의 기원인 대전엑스포 여성안내원이 첫사랑이었다는 사람도 있다. 다음 달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열리는 여수엑스포는 우리에게 어떤 추억을 만들어 줄까.
‘엑스포(EXPO)’는 대규모 박람회나 전시회를 뜻하는 ‘exposition’의 약칭으로, 세계박람회(만국박람회)를 일컫는다. 세계적인 첨단 기술의 발표 무대이자 정보와 문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발명품이 지난 160년간 엑스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엑스포는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 자본과 인력이 총동원된 문명 전시장”이다. 박람회의 역사는 곧 이 거대한 문명 양식을 만들어낸 인간사이며 세상사가 된다. 근대 엑스포의 효시인 1851년 영국 런던박람회부터 2012년 여수박람회까지 국제박람회기구(BIE)가 공인한 67개 세계박람회의 역사를 속속들이 담았다.
1851년 영국 런던박람회에서 하이드파크에 세운 전시관 ‘수정궁’(위). 전통적 건축 재료인 돌이나 벽돌이 아니라 유리와 철골로 덮인 파격적 외관으로 주목받았고 이후 엑스포 전시관의 원형이 됐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박람회에서 벨이 직접 전화기를 시연하고 있다(아래). 이 놀라운 발명품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발명품 대상을 받았다. 다우출판 제공
초기 박람회는 주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열려 국민통합을 끌어내고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데 이용됐다. 1851년 런던박람회는 대영제국의 산업과 무역을 세계에 위풍당당하게 알리고 세계가 산업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세계박람회는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과 함께 움직였기에 20세기에는 미국이 상업성과 대중성, 오락성을 내세운 박람회를 잇달아 선보였다. 1970년 일본 오사카박람회는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한복판으로 나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계 곳곳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상당수는 알고 보면 박람회를 위해 지은 것들이다. 1889년 프랑스 파리박람회장의 출입구 겸 기념물로 만든 에펠탑이 대표적이다. 공모전에서 당시 세계 최고 높이였던 300m짜리 철골 구조물 설계안이 뽑히자 ‘기품 있는 수도 한복판에 흉측한 구조물이 웬 말이냐’며 반대가 빗발쳤다.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매일 에펠탑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파리에서 이 흉물스러운 구조물이 안 보이는 곳은 이곳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에펠탑은 파리를 낭만의 도시로 격상하는 상징물이 되었고, 몇 시간 줄을 서서라도 꼭대기에 올라가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미국 시애틀 한복판에 자리한 185m 높이의 철골탑 ‘스페이스 니들’은 1962년 시애틀박람회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900만 달러를 들인 결과물이다. 캐나다 밴쿠버 대중교통의 근간이 된 공중 경전철 ‘스카이 트레인’은 1986년 밴쿠버박람회를 위해 만들었다.
박람회에서 소개된 다양한 발명품 이야기도 흥미롭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박람회에서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직접 전화기를 시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벨의 전화기는 발명품 대상을 받았고 이듬해 벨 회사가 설립됐다. 놀이공원도 박람회에서 탄생했다. 1893년 미국 시카고박람회를 맞아 위락시설 지구로 조성된 ‘미드웨이 플레이선스’는 대형 회전관람차를 갖춘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으로 기록됐다. 시카고박람회는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참가한 첫 세계박람회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 전시실에 장식용 기와지붕을 올리고 가마, 관복, 부채, 짚신 등 각종 생활용품을 전시했다.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박람회장 안팎에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남았다. 최초의 수세식 변기는 1851년 런던박람회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이었다. 사용료는 1페니. 지금도 화장실 문에 표시된 ‘WC’는 이 수세식 변기를 개발한 조지 제닝스가 발명품에 ‘워터 클로짓(Water Closet)’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한 약자다.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박람회에서 영국 전시관의 여성 안내원들이 입은 짧은 치마 유니폼은 TV를 통해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졌고 ‘미니스커트’란 신조어도 이때 생겼다.
저자의 꼼꼼한 자료 수집이 돋보이며 풍부한 사진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라는 주제로 105개국이 모이는 여수엑스포를 맞아 엑스포와 함께해 온 근현대사를 돌아볼 만하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