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남자 관점에서 보여준다. 남자의 기억 속 첫사랑은 설렘과 상처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강남 부잣집’ 선배를 짝사랑하는 그녀는 남자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난 아나운서가 되어 의사와 결혼할 거야.” 너는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남자의 첫사랑은 설렘을 멈추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첫사랑이란 ‘찌질했던 과거’를 의미한다. 무엇 하나 이룰 수 없던 시절, 처음 품었던 열정이 차가운 벽에 부닥쳐 튕겨 나왔을 때 느꼈던 절망과 열등감,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영화는 남자 관객들로 하여금 아팠던 과거를 찬찬히 살펴보게 만든다. ‘강남 부잣집’ 선배 앞에선 한없이 초라하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보통 남자의 하찮은 자존심을 밑바닥까지 확인시켜 준다.
남자들은 영화를 보며 어느새 깨닫는다. ‘찌질했던 과거’는 가슴 시린 첫사랑을 기억 어딘가에 처박아 둔 것으로 종료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여주인공이 ‘이혼에 합의해 주지 않고 최대한 버텨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사모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술에 취한 그녀의 입에서 세상을 향한 욕설이 비명처럼 터질 즈음, 남자 관객들 사이에 미세한 어깨 떨림의 파동이 전해진다.
잘살고 있으리라 믿었던 첫사랑 그녀 또한 찌질한 삶의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다는 현실, 그 예리한 아픔이 남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다. 세상살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이냐.
하지만 정말로 슬픈 건 다음이다. 자막이 오르고 전람회의 아픈 노래에 마음을 추스를 무렵, 뺨에 느껴지는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 아내들은 껍데기만 남겨놓고 영화에 빠져든 남편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 마음을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 더욱 슬프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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