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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권영민]왜 다시 李箱인가

입력 | 2012-04-28 03:00:00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

왜 다시 이상(李箱)인가? 문학과 예술에서 상상력의 빈곤을 문제 삼게 될 때마다 우리는 이상과 그의 문학을 떠올린다. 시인이자 소설가, 1930년대를 살았던 천재 문인. 오래전의 이 작가는 오늘날에도 많은 작가와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이상의 짧은 생애는 삶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는 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개인적인 문학 활동, 특이한 행적과 여성 편력, 도쿄에서의 죽음 등은 풍문처럼 떠도는 이야기 속에서 과장되기도 하였고,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기도 하였다. 이상의 문학에 대해서는 그가 남겨놓은 문학 작품의 양보다 훨씬 많은 여러 가지 주석이 붙어 있다. 그는 희대의 천재가 되기도 하였고, 전위적인 실험주의자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그가 철저하게 19세기를 거부한 반전통주의자였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 그의 문학이 일본에서 일어났던 신감각파 시운동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평가 절하한 사람도 있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둘러싼 문화적 조건과 그 변화에 일찍 눈을 떴던 예술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두면서 근대 회화의 기본적 원리를 터득하였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재학하는 동안 근대적 기술 문명을 주도해온 기하학과 물리학 등에 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예술 형태로 주목받기 시작한 영화에 유별난 취미를 키웠다. 문명과 예술의 모든 영역에 대한 이상의 폭넓은 관심과 지식은 그가 남긴 문학의 구석구석에 잘 드러나 있다. 그의 문학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반짝이는 호기심을 감지할 수 있다. 현재의 독자들도 이상의 열렬한 호기심에 동화돼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문명과 예술의 모든 영역에 관심


이상 문학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발견이다. 이상은 사물을 본다는 것이 단순히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의 외적 형상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과 함께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주체까지도 포함하는 여러 개의 장(場)을 함께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물에 대한 물질적 감각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중량감은 물론 그 내적 속성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선과 각도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시각을 통해 사물의 존재와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의 기법을 만들어냈다.

이상은 누구보다 먼저 근대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에 의문을 표시하고 그 가치를 놓고 심각하게 질문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문학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어떤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고자 욕심 부리지는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기술 문명의 세계를 지켜보면서 거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변화와 주체의 분열을 주목하였고, 모든 근대적인 것에 대해 회의하고 그 가치를 부정하게 되었다. 주체의 절대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중시하는 근대적 가치 체계를 놓고 볼 때,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이상 문학은 한국문학에서 커다란 충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상 문학은 이상 이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서정시의 시적 진술법이라든지 소설의 서사 기법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시는 낭만주의 시처럼 읊조리기 쉽지 않다. 그의 소설은 리얼리즘적 관점을 통해 이해하기에는 그 성격이 너무나 모호하고 그 서사구조와 의미가 애매하다. 그의 문학은 부르주아 계급의 삶을 전체적으로 묘사하고 그 전망을 노래했던 기존의 문학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인식을 중시한다. 그는 인간의 삶에 숨겨져 있던 현상과 본질의 대립, 부분과 전체의 부조화를 찾아내면서, 모든 사물의 외관의 무의미성을 강조하는 데에 더욱 주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 문학은 세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주체의 시각 자체를 새롭게 변형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이상 문학이 상상력의 하부 구조를 열고 사물의 실체에 도달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로 인정받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그의 문학은 독자들에게 ‘다른 눈’을 가질 것을 일러준다. 1930년대에 쓰인 이상의 작품이 현재에도 유효하게 읽히는 이유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방식 일깨워줘


이상 문학은 새로운 것을 찾는 독자들의 호명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방식을 일깨워주면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왜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모든 사물은 시각을 달리하여 보면 그 숨겨진 부분이 드러난다. 뒤집어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면의 새로움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상 문학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나 이렇게 말한다. ‘시각을 바꾸어 사물을 보라! 모든 사물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만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