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절규, 아트블루 제공
그 아이의 ‘절규’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니 제 아들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만 3세부터 시작되는 프랑스의 유아교육기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의 교실에는 아이들의 이름표가 붙은 뭉크의 그림이 아이들 수만큼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이들에게는 좀 안 어울린다 싶은 ‘절규’라는 그림이었지요. 보다시피 뭉크의 절규에는 공포스러운 불안감이 가득한 붉은 노을이 절규하는 인물의 배경에 불길하게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작과 다른 점은 그 노을 부분을 생각풍선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아이들의 서투른 그림이 각양각색으로 들어 있었어요. 자동차, 개, 고양이, 뱀, 아빠 얼굴, 괴물, 유령, 총…. 아이들이 명화를 보고 절규하는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공포를 느낄 만한 대상을 그린 거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그게 뭉크의 그림이든, 제목이 무엇이든 아이들이 알 게 뭐겠어요. 아이들의 감성과 상상을 일깨우고 고사리손으로 재미있게 표현하게 한 프랑스의 예술교육에 저는 그 순간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만 다섯 살에 한국에 온 아들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보냈을 때 아이는 피아노에 대해 공포를 느꼈습니다. 한글은커녕 프랑스어 알파벳조차도 깨치지 못한 아이에게 선생님은 한 달 동안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게 하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매일 열 번씩 쓰게 했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매일 글씨를 그야말로 그리다가 급기야 울면서 피아노학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지요. 그 이후 아이는 피아노는 소리조차도 듣기 싫어했습니다.
갑자기 동영상의 아이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궁금합니다. 그림 대신에 절규하는 인물의 머리 위에 이런 말풍선이 떠 있지 않을까요? “아악! 내가 이래가 이래가는 못산다!”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