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혜택 많이 보는 ‘R&D세액공제’ 1순위
4·11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은 비과세·감면을 줄여 복지정책을 펼 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정부도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연소득 1200만 원이 넘는 근로자는 소득 수준에 따라 과세표준의 연 6∼38%를 소득세로 내야 합니다. 기업은 벌어들인 소득에서 과표에 따라 연 10∼22%의 법인세를 내야 합니다. 물건을 살 땐 물건값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부동산을 팔 땐 처음 살 때보다 오른 금액의 일정 비율을 양도소득세로 내야 합니다.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는 법. 비과세·감면은 바로 조세의 ‘예외’입니다. 정부는 특정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과세기술상의 이유로 세금을 받는 게 오히려 손해일 때 세금을 경감해 줍니다. 우리나라는 ‘조세법률주의’에 의거하여 법률로 비과세·감면 원칙을 정해 국회 의결 절차를 거쳐 시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비과세·감면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나라살림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라는 것입니다. 재정부는 올해 총 국세수입은 205조9250억 원으로 예상하면서 비과세·감면액은 31조9871억 원(13.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깎아준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기도 합니다. R&D 장려 목적으로 세금을 공제해 줬더니 연구개발과 상관없는 직원 인건비를 R&D 비용으로 포장해 탈세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유지됐던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애초 불경기에 기업의 투자를 ‘임시’로 독려하려 도입했는데 기업들의 이런저런 요구로 ‘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22년간 존속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비과세·감면을 줄이겠다는 건 이런 비효율적이고 효과가 미미한 제도를 정비해 세정(稅政) 원칙을 바로 세우고 조세 수입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금전적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나 국회가 조금이라도 줄일 의지를 밝히면 당사자들은 그야말로 ‘총력 저지’에 나섭니다. 또 비과세·감면 대부분이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나온 것들이라 딱히 줄일 만한 걸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정부는 올해 말로 혜택이 끝나는 96개의 비과세·감면을 우선정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올해 정비 1순위는 ‘R&D 세액공제’입니다. 올 감면액만 2조5994억 원에 이르는데, R&D 비용 중 73.8%를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어 혜택 대부분이 대기업에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중소기업 투자 세액공제 △장기주택마련저축 비과세 △성실사업자 의료비 공제 등도 정비 검토 대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없어질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대체로 이런 제도들이 축소 및 폐지 검토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8월에 내년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비과세·감면 정비방안도 함께 밝힐 계획입니다. 이렇게 마련된 정부안은 국회 논의를 거쳐 연말 예산안과 함께 예산부수법안으로 처리됩니다. 당장 서민 중산층의 세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감면 축소를 공언한 재정부가 “서민과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세부담이 늘지 않도록 신경 쓰겠다”고 밝힌 데다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회가 비과세·감면 혜택을 없애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세금을 덜 내는 걸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게 하나 둘 생겨난 예외 조항들이 원칙을 훼손하고 국가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생각해 올해만큼은 정부와 정치권의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