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땐 학생처벌보다 부모교육 중요”
장 저마틴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은 27일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교실 밖 온라인 공간에서 휴대전화, 인터넷을 이용한 왕따나 괴롭힘이 새로운 형태의 학교폭력이 됐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IT 교육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장 저마틴 위원장은 2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호암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스위스 소년법원 판사 출신으로 2005년부터 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한국의 이양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이어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북한을 비롯한 세계 193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에 따라 창설된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5년마다 가입국의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인권 상황을 모니터링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정책대안 등을 만들어 권고한다.
○ “IT 발달로 온라인 속 폭력, 왕따 문제 심각”
그는 “특히 IT의 발달로 남에게 신체적, 성적 학대를 가하는 사진을 유포하는 등 왕따나 괴롭힘에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사용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처럼 교실 밖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따돌림과 폭력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부모, 성인 대상의 교육뿐 아니라 IT 교육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에서 학교폭력 예방책으로 형사 처벌 연령을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일률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고 사법부에 맡기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처벌적 접근은 단기간에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 해법은 아니라는 것. 그는 “처벌을 해결책으로 보고 형사 책임 나이를 낮추다 보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형사 책임을 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근본적 해결책은 교육과 예방밖에 없다”며 “불특정 다수 대상의 인권 교육, ‘위기의 가족’과 ‘위기의 아이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 비행 청소년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국제사회 ‘제3선택 의정서’ 비준 필요”
저마틴 위원장은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중국의 행동은 난민협약, 고문방지협약뿐 아니라 국제법인 유엔아동권리협약까지 위반하는 것”이라며 “위원회가 앞서 중국에 ‘탈북자 중 특히 아이들이 있을 때 강제 북송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제 북송된 어른 탈북자들이 공개 처형되는 상황인데 아이들은 어떨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제3선택 의정서는 권리를 침해당한 아동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진행했으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는 ‘개인 청원권’ 제도다. 지난해 말 유엔총회에서 채택돼 현재 20개국이 서명을 했다. 10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국제법으로 효력이 생긴다. 저마틴 위원장은 “세계 인구의 절반인 18세 미만 아동의 권리를 위해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준 동의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인권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
저마틴 위원장은 한국 내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자녀 문제에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국이 관련 프로그램이나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문화가정 아동을 배려하고 보호하는 데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소수자나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태도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권은 제도나 협약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투, 방식 같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 가운데 아동 관련 예산이 가장 낮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예산 자체가 낮은 것도 문제지만 아동·청소년에게 쓰이는 예산이 부처마다 달라 집계조차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장하기 위한 예산 확충을 비롯한 새로운 예산 편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