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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트위터 팔로어 130만명’ 작가 이외수

입력 | 2012-04-30 03:00:00

“좌파냐 우파냐 굳이 묻는다면, 난 ‘내 멋대로 살고파’다”




작가는 매일 하루 다섯 시간씩 인터넷을 하고 자신에게 온 10만 건의 트윗을 모두 읽는다고 했다. 이외수 씨 제공

《 작가 이외수(66)의 부인 전영자 씨(60)는 당혹스러워했다. “약속도 없이 오면 어쩌느냐, 그렇지 않아도 오늘 (남편이) ‘정부가 광우병 나오면 수입금지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트윗을 올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와 민감해 있다”고 했다. 기자는 “대정부 비판을 하던 분이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지지하고 며칠 전에는 대남도발 협박을 하는 북한에 ‘뻑 하면 서울을 날리겠다고 협박하는데 제발 불쌍한 자기 백성들이나 보살폈으면 좋겠다’는 비난 트윗도 올렸다. 배경을 듣고 싶다”고 설득했다. 안으로 들어간 전 씨가 10여 분 뒤 “먼 길 온 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신다”며 문을 다시 열었다. 27일 오후 3시였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봄기운이 완연한 강원 화천 산골짜기. “막 자려던 참이었다”는 그는 티셔츠 위에 카디건 하나만 걸치고 기자를 맞았다. 》
―여당 후보 지지 트윗으로 마음고생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산전수전 공중전에 ‘네티전(네티즌+戰)’까지 거친 ‘만성 다구리(몰매의 은어) 수용증’ 환자인데(웃음) 편 가르기가 이 정도였나…, 마음이 아프긴 했다.”

―야당 성향이 강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당 후보를 지지하다니, 의외였다.

“공약이 참신하거나 실천하는 데 노력해 왔던 야당 후보 15명도 지지했었다. 당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시장 선거,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선거 때에는 멘토단으로 일했다.

“이번 총선 때도 (야당에서) 청이 왔는데 사양했다. (멘토단이) 썩 좋은 게 아니었다. 좀 불편하다 할까.”

―뭐가 말인가.

“정치적 틀에 갇히는 느낌? 늘 말해왔지만 나는 중도파다. 굳이 좌파냐, 우퍄냐 묻는다면 ‘내 멋대로 살고파’다(웃음).”

밤을 꼬박 새웠다는데도 피곤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느릿한 말투는 부드러웠고 종종 유머가 섞였지만 논쟁적 이슈에는 단호하고 논리적이었다.

―중도라면서 여당 비판만 하는 것은 불공정한 거 아닌가.

“야당보다는 여당과 정부가 하는 일이 더 많잖은가. 영향력도 세고. 나는 예술가다. 예술가는 예민한 더듬이를 갖고 시대를 감시하는 감시자다. 또 여당 비판하면 다 반대편인가? 내 식구라도 잘못했으면 꾸짖는 게 당연하다.”

‘이외수의 우화상자’라는 부제가 붙은 우화집 ‘외뿔’에 삽입된 작가 자화상. 그는 그림 솜씨도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강원 어린이재단과 서울 어린이재단에 그림을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유독 현 정부 들어 날 선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쓴소리 많이 했다. 그때는 트위터 대신 플레이톡이란 게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도 작품 속에 정부 비판을 한두 마디라도 녹였다. 그땐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가정 파탄나기 쉬운 세상이었으니 좀 비굴하긴 했지만(웃음). 난 본래 ‘트리플 에이(AAA)’ 극소심형 인간인데 늙어서 용감해졌다. 또 옛날엔 유명하지도 않았다. 뭘 얘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져 같은 이야기(정부 비판)를 해도 주목받는 것 같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 글을 팔로잉하는 트위터리안이 130만이다. 트위터 공간은 야성(野性)이나 진보성이 강하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젊은 세대가 대다수인 공간에서 60이 넘은 내가 맹렬하게 활동하니 의외라 할 수 있겠지만 (세대를 잇는) 다리 역할도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나는 예술가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트위터를 통한 정치적 발언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새누리당에서 멘토가 돼 달라는 청은 없었나.

“트윗을 통해 세 번 정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돕겠다’고 밝힌 적도 있지만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약해서 거절 잘 못한다. 한명숙 대표 선거 때에도 한 대표가 눈보라를 헤치고 찾아와 부탁하는데 거절이 말이 되나. 내가 무슨 제갈공명이라도 되나, 총리까지 한 분인데….”

기자가 그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달 그를 잘 안다는 한 퇴역 장군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그 퇴역 장군은 “현역 시절 내가 이 씨를 ‘명예 헌병’으로 위촉한 일이 있었는데 군 내부에서 ‘이외수와 친하니 빨갱이 아니냐’고 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씨는 국가관이나 안보관이 철저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이 씨의 말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빨갱이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에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직업군인이다. 국립묘지에 묻혀 계신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화천에서 살았는데 친구들이 불발탄이나 지뢰를 잘못 건드려 손목이 날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죽은 친구도 있다. 내게 북한은 관념이 아니라 체험이다.”

그의 말이 이어지면서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부친부터 내 아들까지 3대가 병역을 마쳤다. 내가 군에 있을 때 김신조가 넘어오고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 났다. 복무가 연장됐고 정말 ‘개고생’을 했다…. 내가 젊을 때 하도 많이 굶어봤기 때문에 백성들 굶겨 죽이는 지도자는 납득이 안 된다. 더구나 배고파 강 건너는 백성들에게 총 쏘는 사람들 아닌가. 인권도, 표현의 자유도 없는 그런 곳을 내가 좋아한다고? 심지어 ‘종북 좌빨’이라고? 하기야 종북은 종북이지.”

그가 드디어 ‘베일’을 벗는가(∧∧). 기자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듯 그는 “화천이 최북단이거든” 하며 크게 웃었다.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 총선에서 강원도는 새누리당 후보가 모두 당선됐는데….

“강원도는 군인 정서를 읽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돌면 모두 외출외박금지다. 그러면 경제가 얼어붙는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심정이 된다. 또 강원도에는 규제만 있고 혜택은 없다는 정서도 지배적이다. 4대강 한다면서 뿌린 수십조 원도 다 남쪽이잖은가. 이광재 최문순 도지사 될 때도 ‘힘들다, 갈아보자’는 심정이 강했다. 그런데 그동안 야당 시대가 너무 길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거 알지만 ‘그래도 (또) 갈아보자’는 심정이 새누리당으로 몰린 거다.”

“팔로어가 130만”이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린다. 화제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돌렸다.

―비난 댓글에도 의연하리라 생각했는데 성격이 극소심이라니 의외다.

“SNS가 광속이라고들 하는데 내 글을 올리기 위해 클릭하는 순간, 1초 만에 130만에게 전송된다. 새누리당 후보 지지 트윗 올렸을 때에는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됐다. 1초에 1000명 이상이 클릭하면 디도스 공격이라 자동 인식돼 다운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들이 ‘자기 홈페이지를 자기가 공격하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고 하더라(웃음). 어쨌든 그 일로 ‘죽일 놈’ ‘강원도 시뻘게서(새누리당의 로고색) 좋겠다’ 등 욕을 많이 먹었다.”

―SNS의 장점과 단점은….

“치매 걸린 부모님 찾아 주기도 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119에 연락해 구한 일도 있다. 문제는 부정확한 정보들이 떠돈다는 거다. 자체 내에서 잘 확인이 안 된다.”

―선생에게 트위터 공간은 놀이터인가.

“노(No). 습작공간이자 정보공간이며 소통공간이다. 트위터에 올리는 글은 140자로 제한된다. 어떤 땐 1시간씩 씨름한다. 살코기만 사악 발라내 접시에 올리는 그런 매력이 있다. 또 산골 사는 내게 SNS는 세상을 보는 창이기도 하다. 내게 매일 최소 10만 건의 트윗들이 올라오는데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읽는다.”

―모두 읽는다고?

그는 “예스, 노” 대답 대신 “트위터나 글을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그게 뭔가.

“배려다. 배려 없는 소통은 있을 수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씹을수록, 오래 읽을수록 맛이 나는 글이 있는데 그건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담긴 글이다.”

▶ [채널A 영상] 이외수 “총선 투표율 70% 기원 삭발 시뮬레이션”


▼ “나더러 기인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세상 사람들이 기인” ▼

“한때 나도 분노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지금은 힘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 이외수. “식사시간도 수면시간도 내 마음대로”라는 작가는 밤에 일하고 낮에 자면서 식사도 하루 한 끼만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세간에 알려진 기인적 풍모보다 치열하게 글쓰기에 몰두하는 모범생, 젊은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교사의 풍모가 더 느껴졌다. 화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그는 “나도 한때 분노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굶기를 밥 먹듯(?) 하고 기저귀, 우유 살 돈이 없어 월부책 장사를 하던 30대 후반, 죽음 직전까지 간 영적 체험을 한 뒤 180도 달라졌다”고 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된 소설도 못 써보고, 이승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리고 살아났다. 그 뒤 인생이란 게 빈손으로 왔다 가는 건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사랑이구나, 깨달음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주니까 하는 일마다 잘됐다.”

―착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정말 그런가.

“그럼. 예수도 부처도 ‘사랑해라, 자비로워라’ 한 이유가 있다. 사랑은 모든 자물쇠를 여는 만능열쇠다.”

다시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에 한마디한다면….

“거저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쪽에서야 노력해 여기까지 왔고 이번 승리가 당연한 것이라 하겠지만 국민 눈에는 거저먹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좀 다른 얘기인데, 높은 분들은 어묵, 떡볶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한쪽에선 용역들이 (좌판을) 다 때려 부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번에 광우병도 그렇다. 광우병만 나오면 괴담 괴담 하는데 내가 새로운 괴담을 하나 말하겠다. ‘이제 우리 국민은 광우병 같은 것은 걱정 안 해. 다만 국민과의 약속을 뻑 하면 어기는 정부를 걱정해’다.”

―야당은….

“한마디로 무력하다. 이번에 (서울 강남을에서) 봉인 안 된 투표함들이 발견됐는데 이의제기도 안 했다. 국민이 야당에 거는 기대는 집권층의 부정이나 비리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의문을 제기하고 밝히는 노력을 해달라는 거다. 국민을 대신해 약자 편에 서는 게 야당인데 선거 끝나면 강자인 줄 안다. 국민들을 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그건 악행이다, 악행.”

―‘나꼼수’ 형님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무근이다. 김어준 씨는 몇 년 전 케이블 시험 방송할 때 초대 손님으로 한번 같이 만난 적이 있지만 김용민 씨나 주진우 씨는 본 적 없다.”

―나꼼수 현상을 어떻게 보나.

“정치적으로 우리 사회에 이제 금기는 없다는 교훈을 주었지만 욕설은 봐주기 어렵다. 이번에 남을 험담하고 씹는 것만 갖고는 더 이상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음 대선의 화두는 뭐라고 보는가.

“진정성이다.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지도자, 우리나라를 멋있는 나라, 군인들이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잔머리, 꼼수, 막말,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 정치인들은 이제 국민들이 다 알아본다.”

―정권 창출이 목적인 정치의 영역에 진정성만 요구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 아닌가.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랑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 말이다. 사랑이나 아름다움이 예술가의 전유물은 아니다.”

―현재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 중 지지 후보가 있나.

“있다.”

―누군가.

“비밀이다.”

―선거 임박해서 밝힐 건가.

“밝힐 거다.”

질문마다 다변이었던 그가 이번엔 단답형으로 끝냈다. 좀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거실 한쪽에 놓인 대형 태극기. 이 씨는 “태극기의 기운이 너무 좋다”며 “한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도 크다. 한글날이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한글을 기리는 마음으로 자체적으로 쉰다”고 했다. 화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교육이다. 머리로 사는 시대가 가고 마음으로 사는 시대가 왔는데 교육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부자 되라’ ‘이기라’고만 한다. 요즘 청춘들이 가장 불안 초조해하는 것은 ‘미래’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미래는 불투명했잖은가. 돈이 도덕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삶에 더 압박감이 느껴진다. 제비는 그저 잘 날면 되고 두더지는 땅 잘 파면 되고 물고기는 헤엄 잘 치면 된다. 인간 세상도 한 가지만 잘하면 먹고사는 데 별 지장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제비한테 땅까지 파라고 하고 두더지한테 날아 보라고까지 하는 격이다. 이런 말 하면 젊은 애들은 자신감으로 얼굴이 밝아지는데 학부모들은 싫어한다(웃음).”

그는 이어 “젊은 애들에게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요즘 애들은 질풍노도가 아니라 ‘질풍로또’다. TV에 나오는 ‘생활의 달인’을 봐라. 빠르면 3년, 대개 5년, 열심히 일해 10년이 지나면 가게 내고 집 사고 차 사고 자식들 대학까지 보낸다. 그러면서 정말 행복해한다. 학연 지연 상관없지, 회사에서 잘릴 걱정 없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행복이 도대체 뭔가, 꼭 대기업 들어가고 억대 연봉 받아야 행복한 건가. 10위 경제대국에서 국민 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다. 이게 말이 되나.”

그는 세간에 파격을 일삼는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만나보니 모범생이나 교사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는 교사를 꿈꿔 춘천교대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중퇴했다.

―기인이라는 평이 있다.

“기인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괴이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나는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기인으로 보인다. 어떻게 그토록 돈을 존경할 수 있을까(웃음). 요새 젊은 애들 애 안 낳으려고 하는 것도 기이하다. 살기 힘들어 안 낳는다는데 나는 밥 굶으면서도 (애들을) 낳았다. 큰애는 내 손으로 받았다. 자식은 사랑으로 키우는 거지 물질로 키우는 게 아니다.”

―이미 성공해 돈과 명예를 다 가졌으니 그런 말 하는 거 아닌가.

“하긴 요즘 사람들 눈으로 내가 기인이긴 하다. 밑천 하나 없이 맨손으로 시작했고 학연 지연 공화국에서 떼(무리) 안 짓고 혼자서, 그것도 지방에서 성공했잖은가. 기인 맞다(웃음). 구두만 잘 닦아도 빌딩 하나 맡으면 직원 10명 두고 일한다. 거의 중소기업 사장이다. 인생에 거저는 없다. 거저먹겠다는 생각이야말로 기인적 생각 아닌가.”

―화천군에서 26억 원이나 들여 선생의 집필실을 포함해 ‘감성마을’을 조성했다. 세금을 너무 막 쓰는 것 아닌가.

“나도 처음엔 부담스러워 주저했다. 춘천에서 20년 살았는데 집 주변에 공사가 많아지자 천식이 심해져 숨쉬기도 어려웠다. 근데 화천군수가 무조건 그냥 와서 작품에만 전념하라고 했다. 나도 거저 있는 거 아니다(웃음). 부대 내 ‘관심 사병’(문제 사병)들 찾아가 상담도 하고 무료로 글쓰기 문학연수도 한다. 장학금도 준다. 지난해에는 구제역 때문에 산천어 축제가 취소됐는데 100만 명이 찾는 축제 아닌가. 군민들이 1200억 원가량 손실을 봤다. 서울 가서 축제 알리느라 바빴다. 준비한 찐빵을 트위터에 올려 이틀 만에 700상자 팔았다. 지난해 배추 값 폭락 때도 우리 마을 것은 다 팔았다. 며칠 전에는 고로쇠 물을 3시간 만에 1600병 모두 팔기도 했다. 수익금은 전액 군에 돌아간다.”

작가가 그리고 쓴 ‘외뿔’에 수록된 그림. 개구리가 연꽃대를 붙잡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개구리한테 연꽃은 진흙 속에 핀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매달리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림 옆에는 ‘인간들은 자기 눈으로 실체를 보지 않으면 어떤 존재도 믿으려 들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는 글이 쓰여 있다.

―소설가라면 노벨문학상 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사에 남을 작품을 쓸 생각을 해야지, 트위터에, CF에, 드라마 출연, 라디오 방송 진행까지 하고 이제는 인터넷 쇼핑몰까지 하는 건가(웃음). 소설가인가, 사회운동가인가, 연예인인가.

“하하, 나는 하나인데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 난 문학상하고는 담쌓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독립군이다. 문단 활동을 한 적도 없다. 평생 작가 독자 출판사 3각 구도를 유지하며 작품 활동 했다. 그리고 이거저거 한다고 욕하는데 칼국수 하나 잘 끊이면 수제비도 그냥 끓이게 돼 있다(웃음).”

실제로 그에겐 여러 가지 모습이 겹쳤다. 젊은 애들이나 쓰는 인터넷 언어를 구사하면서 ‘말이 나오는 대로 뱉어낼 때’에는 철없는 아이 같아 보였지만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세상과 정치를 질타할 때는 현자(賢者)처럼 보였다. 그는 한때 ‘깨달음을 얻겠다’며 수행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도를 닦아보니 어떻던가.

“옛 선사들이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도가 있다고들 했는데 아무리 가부좌를 틀고 앉아도 뭐가 생각이고 마음인지 구별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생각은 뭐고 마음은 뭔가.

“흥부가 다리 부러진 제비를 보았을 때의 그 마음. 제비를 고쳐주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그것, 제비와 내가 하나 되는 바로 그 순간이 생각이 끊어진 자리, 마음이다. 놀부는 ‘제비 다리 고쳐주면 부자 된다고? 그럼 다리를 부러뜨려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 따로, 제비 따로다. 무형이든, 유형이든 상대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바로 마음이다.”

기자가 ‘그렇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나’고 묻자 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럼, 한 번 갔다 왔는데 겁날 게 없지”라고 말했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대화를 시작한 지 3시간 반이 지났다. 그가 말한 정치적 발언에 공감할 때가 많았지만 복지 논쟁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구체적인 현안에서는 정교하지 못했다. 하기야 예술가에게 치밀한 사회과학적 상상력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외수는 기인” “이외수는 좌파”라고 한다. 기자 역시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기인으로 보인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낙인찍으며 살고 있는가….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마음이 훨씬 열려 돌아왔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 작가 이외수는?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1976년 종합월간지 ‘세대’에 중편소설 ‘훈장’으로 데뷔한 후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칼’ ‘괴물’ 등의 소설을 썼다. ‘외뿔’ ‘하악하악’ ‘절대강자’ 같은 우화집, 에세이집, 시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도 냈다. 생존 작가 최초로 지자체에서 작가를 위한 마을을 마련해 줘 7년 전부터 강원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작가의 작명)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마을엔 집필실, 강의실, 시비(詩碑)들도 있다. 곧 2005년 ‘장외 인간’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장편소설 집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는 “물 위를 걷는 남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삭막하고 메마른 시대에 매우 인간적이면서 감성적인 남자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화천에서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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