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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아편처럼 강렬한 불빛

입력 | 2012-05-02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일주일이 멀다 하고 유가가 치솟고 있다. 개화기 무렵에는 어떠했을까. 개화승 이동인이 일본에서 석유와 석유램프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이 땅에 상륙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석유. 그 신기한 기름은 순식간에 우리네 안방을 차지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1880년(고종 17년)에 석유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적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진년 이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불그스레하고 냄새가 심했으나, 한 홉이면 열흘을 밝힐 수 있었다.”

미국 스탠더드오일의 솔표석유 광고(황성신문 1903년 10월 28일)를 보자. 이 회사는 1897년 12월 인천 월미도에 석유저장소를 만든 다음 ‘솔표’라는 브랜드로 석유를 판매했는데 곧 우리나라 석유시장을 독점했다. 이 광고에서는 솔표석유(松票油)와 다른 상표의 석유(他票油)를 재미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비교했다. 광고에 등잔 두 개를 그려 넣었다. 다른 상표를 쓴 왼쪽 등잔에서는 그을음이 많이 나지만 솔표석유를 쓴 등잔은 그을음 없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이른바 공격적 비교광고를 했던 셈. 여기에서 비교광고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광고에서는 구체적으로 다른 브랜드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타표유(他票油)’라는 한마디로 모든 브랜드들을 싸잡아 깎아내린다. 보디카피의 첫줄에서는 “화광(火光·불빛)이 선명(鮮明)하고 유연(油烟·그을음)이 부다(不多·많지 않은)한 거시 상품(上品)이라”며, 불빛이 선명하고 그을음이 나지 않는다는 석유의 장점을 명쾌히 제시했다. 이런 카피 메시지에 눌려 우리네 재래의 기름은 서서히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석유가 우리네 안방에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써오던 아주까리기름이나 송진기름은 사라져버렸다. 아주까리 동백도 시들어버릴 수밖에.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의 거대 자본에 의해 기름 시장이 요동치고 있으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속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근대인이 되려고 몸부림치며 1900년대를 살아가신 분들에게, 석유가 밝혀주는 등잔 불빛이 설령 “아편처럼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말라르메의 시)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