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6년 전인 2006년 박 씨와 잇달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첫 만남은 그해 2월 일본 기자클럽의 방한(訪韓)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였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맞아 우리는 포스트 노무현의 유력 후보를 차례로 방문했다.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씨, 민주당의 정동영 씨와 김근태 씨도 만났지만 가장 먼저 국회에서 만난 사람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그녀였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날카로웠지만 방한단 일행이 입을 모아 말한 첫인상은 정치가답지 않은 기품 같은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자란 덕분일 것이다. 어딘가 슬픔을 띠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 것은 모친과 부친을 차례로 흉탄에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선입관 때문이었을까. 황량한 거친 바다의 한가운데서 단숨에 나라의 톱에 뛰어오를 만한 기백은 약간 아쉽다는 느낌을 가졌다.
한국서 여성 대통령 탄생할지 관심
“유교 국가에서 정말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나요”라고 나는 모두가 하고 싶으면서도 못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져봤다. 그녀는 한국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강조하면서 “이미 성별(性別)로 판단하는 국민은 아니다”라고 기대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안 있어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했다.
세계를 둘러보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바야흐로 여성 톱 리더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나에게는 한국 정치의 대립구조나 정책 다툼과는 별도로 두 가지 관문이 떠오른다.
첫째는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정말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일본에서도 총리 자리에 여성이 앉은 예는 없다. 한국 정계의 한 원로는 수년 전 “아무리 한국이 변했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는 여성에게 큰 벽이 막아선다”고 나에게 말했지만 과연 그 예언은 뒤집힐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북한이라는 공포적인 존재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군사적 긴장이 한층 높아질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여성 리더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감당할 수 있다고 국민이 판단할까.
또 한 명 아시아에서 인상에 남는 사람은 역시 강한 리더십을 자랑한 인도의 인디라 간디 총리이다. 네루 총리의 딸이었던 점은 박 씨와 비슷하지만 그녀는 1971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파키스탄과의 전쟁(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이겨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정받았다. 요컨대 대처보다 선배에 해당하는 아시아의 ‘철의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단 전쟁이라는 유사시에는 여성이 강한 것인가. 칼에 베이는 테러의 공포를 극복한 박 씨에게도 우아한 인상과는 별도로 그런 소양이 있을지도 모른다.
안철수 거취 등 연말 대선 흥미진진
하지만 소규모 전투는 차치하고 한국에서 전쟁은 절대로 피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철의 여인’ 기풍이 환영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김정은의 조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김일성 주석. 박 씨의 부친과 격렬히 대적한 인연이 필요 이상의 긴장을 초래하지 않을까란 점도 선거에서 논란이 될 요소로 보인다.
카라와 소녀시대처럼 일본에서도 한국 여성은 인기의 초점이지만 과연 대통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무당파로 압도적 인기가 있다는 안철수 씨의 거취를 포함해 이웃나라에서 봐도 끝없이 흥미로운 선거의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