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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빈라덴 사살 1년

입력 | 2012-05-03 03:00:00


‘최종 해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600만 유대인 집단학살 작전의 이름이다.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계획하고 지휘했다.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아이히만을 생포해 이스라엘 재판정에 세우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고 다녔다. 1960년 아르헨티나에 은신해 있던 아이히만을 체포한 모사드는 2년 뒤 반(反) 인륜범죄 죄목으로 그를 사형시켰고 시신을 바로 소각해 바다에 뿌렸다. 벤구리온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나치 추종자들이 아이히만을 숭배의 대상으로 둔갑시키지 못하도록 그 흔적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9·11테러의 주범으로 미국이 지목한 공적(公敵) 1호였던 오사마 빈라덴은 지난해 5월 2일 10년간의 은거 끝에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원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미국은 사망 후 24시간 내 매장하는 이슬람의 관례를 존중해 그의 주검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긴 뒤 수장(水葬)했다고 밝혔다. 빈라덴의 시신을 받아들일 나라도 없고 매장 지역이 ‘혁명의 성지’가 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밀 유전자(DNA) 분석을 위해 미국으로 후송해 모처에 보관 중일 것이라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빈라덴이 이끌던 알카에다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 카불과 바그람 공군기지를 방문했다. 사살한 지 만 1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연임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지구 정반대편에 펼쳐진 안보 현장을 찾아 미국 국민에게 빈라덴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도록 해 선거용 호재로 내세우려 했을지 모른다.

▷바그람은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시절부터 지속돼 온 아프간 침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79년 아프간 침공 당시 소련군의 군사기지이자, 소련 철군 뒤 탈레반과 북부동맹 내전(內戰)의 주요 무대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전쟁의 포연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바그람 기지의 미군들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에 미군이 철군할 것을 공언하며 “아프간의 여명 속에서 새로운 날의 빛이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안정은 물론이고 미국이 진행 중인 ‘테러와의 전쟁’이 언제 종착점에 이를지도 가늠할 수 없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