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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읽는 고전]장수선무 다전선고(長袖善舞, 多錢善賈)

입력 | 2012-05-04 03:00:00

長: 길 장 袖: 소매 수 善: 잘할 선 舞: 춤출 무
多: 많을 다 錢: 동전 전 善: 잘할 선 賈: 장사 고




한비자 오두(五두) 편에 나오는 말로 긴 소매가 있어야 춤추기에 적당하고, 본전(本錢)이 많이 있어야 장사하기에 좋다는 말이다. ‘多錢善賈’는 ‘다재선고(多財善賈)’라고도 하는데, ‘고(賈)’자는 점포(店鋪)를 개설해 놓고 매매(賣買)하는 상인(商人)을 가리키는 명사이기도 하고 ‘매매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도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 35에 의하면 “많이 쌓아두어야 사고파는 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니 겨우 몇 푼밖에 없으면 어떻게 사고팔고 하겠는가”라는 풀이를 덧붙여 두었다.

물론 한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강성한 나라에서는 모략을 꾸며도 성공하기 쉽지만, 쇠락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에서는 계략을 세우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한비에 의하면, 진(秦)나라에서 임용된 자는 계책을 열 번이나 바꾸어 실패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연(燕)나라에서 임용된 자는 계책을 한 번만 바꾸어도 성사되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진나라에서 임용된 자가 지혜롭고 연나라에서 임용된 자는 반드시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나라의 치세 여부라는 조건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비는 더 비유를 들어 주(周)나라는 진(秦)나라를 버리고 합종을 하였으나 1년 만에 공격을 받아 함락됐고, 위(衛)나라는 위(魏)나라를 버리고 연횡을 하였으나 반년 만에 멸망하게 됐다. 만일 이 두 나라가 엄격한 다스림과 철저한 신상필벌과 경제적인 안정을 취했다면 결코 쉽게 망하지 않았으리라는 설명이다.

수완(手腕)이란 세(勢)와 재(財)가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한비의 시각 역시 틀린 것은 아니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학습 여건을 좋게 하려는 맹모의 차선책이었으니 말이다. 주어진 환경을 떨쳐버리고 조국 초나라를 벗어나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22년간 진나라의 시스템을 구축한 이사(李斯)는 한비의 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은 것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