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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게한 그 사람]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입력 | 2012-05-04 03:00:00

매일 1시간씩 30년간 인문사회학 가르쳐준 아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조벽은 이 책을 다섯 스승님께 바칩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기본을 주셨고, 아버지는 나에게 정신을 주셨고, 나랑은 나에게 믿음을 주셨고, 고 김원룡 박사님은 나에게 확신을 주셨고, 애씨는 나에게 발전을 주고 있습니다.” 1998년 봄,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 쓴 책 ‘한국인이 반드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 맨 앞 장에 제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들을 나열했습니다. 첫 네 분은 과거형이었고 마지막에 언급된 ‘애씨’는 현재 진행형으로 적었습니다.

그 후로 15년이 지난 오늘,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다시 다섯 스승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마지막 스승인 ‘애씨’를 만난 지 정확히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애씨’는 제 아내 최성애의 애칭입니다. 아내에게 ‘스승님’이란 칭호를 붙여주었으니 저를 세상에 둘도 없는 팔불출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왕 그리 알려졌으니 이제 왜 그런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속이 메스꺼워질 수 있음을 독자에게 미리 경고합니다.

저희는 미국 유학 시절에 누님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착하고, 새까만 머리카락에 깨끗한 피부가 좋았습니다. 처음 만난 날, 은퇴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었고 답은 사회가 외면하는 아동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서로의 꿈이 일치함을 확인하는 순간 저희는 결혼할 것을 그 자리에서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귀는 동안 누가 청혼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는 결혼하였습니다. 그 흔한 허니문 여행도 없었습니다. 이만하면 저희 둘 다 로맨스는 빵점이 확실합니다.

비록 대학원은 같은 해에 시작했지만 제가 먼저 졸업하는 바람에 아내는 일단 학업을 중단하고 내조하였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늦게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노부모님 모시느라 또다시 7년을 보냈습니다.

제 처가 집안 살림을 돌보는 사이, 저는 두 가지를 이루었습니다. 제 전공 분야인 기계공학에서 정교수가 되었고 추가로 인간발달학 분야에 학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간발달학은 제 처의 전공 분야입니다. 저희가 거의 매일 한 시간 이상 산책을 했는데 그때 제 처가 그날 읽은 책의 핵심을 제게 요약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공학도로서 접하기 쉽지 않은 인문사회 분야에 매일 개인 과외수업을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일 년 365일, 매일 한 시간씩, 30년이면 총 1만 시간이 넘습니다. 강의시수로 따지자면 4년제 대학을 연이어 다섯 번이나 다닌 것에 해당되고, 맬컴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만족시킨 시간입니다. 그 결과, 저는 기계공학 교수 이외에 환경정책대학원 교수, 옴부즈맨, 심리상담사, 학습센터와 상담센터 센터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심리학회에 초빙돼 강연도 하고 사회복지 전문가 세미나에도 토론자로 참여하였습니다. 교수법과 상담법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바깥 활동을 하는 사이, 제 처는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파뿌리같이 하얀 머리와 많은 사람의 존경입니다. 틈틈이 쓴 책 10권과 큰 반향을 일으킨 토크쇼와 다큐멘터리로 인해 제 처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학습의 즐거움에 만족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양가의 부모를 모시고 아이 여섯을 키우면서 공동의 행복을 추구한 자만 누릴 수 있는 평온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기여한 것도 있습니다. 아내에게 신뢰를 주었고 신의를 지켰습니다. 저희 부부도 여느 부부와 같이 다투기도 했고, 화도 냈고, 눈물이 나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것은 첫 만남에서 확인한 공유된 가치관이며 삶의 목표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금 우리의 꿈을 향해서 함께 가고 있습니다. 서로 없는 듯 있어 왔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제 처는 ‘나를 있게 한 사람’이며 앞으로 계속해서 ‘나를 있게 할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조벽이 팔불출인 것도 확실합니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