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국회,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다
공자는 법(法)이 아니라 예(禮)의 위반을 말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법에 명확한 금지는 없어도 각 기관이 지켜야 할 직분의 내적 한계가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통과를 주도한 국회법은 여야가 다투는 쟁점 입법의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것으로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한다면 헌법 개정으로나 해야 할 일을 국회 입법으로 해버린 현대판 참월에 해당한다.
헌법은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일반정족수를 정해놓고 강화된 특별정족수는 헌법에, 완화된 특별정족수는 법률로 정하고 있다. 개정 국회법에 따르면 소수당이 반대하는 쟁점법안은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 단계마다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한다. 헌법만이 강화된 특별정족수를 규정한 정신을 훼손한 것이다.
재적의원 5분의 3은 60%를 의미한다. 60이 50을 대신하는 것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대한 참월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100, 즉 만장일치 합의다. 그러나 50에서 100으로 갈수록 합의에 드는 비용이 증가한다. 50은 정당성의 요건을 맞추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는 숫자다. 그러나 비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과반은 항구적인 과반이 아니라 잠정적인 과반이다. 현재의 다수당은 미래의 소수당이 되고 현재의 소수당은 미래의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과반에 승복하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 보호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합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예외는 헌법만이 정하고 있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개정 국회법
조장(助長)이란 말은 춘추시대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이 묘목이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그것을 뽑아 올리고는 ‘내가 묘목을 도와서 자라게 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성장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결국 묘목을 말라죽게 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몸싸움을 방지하고 대화의 정치를 조장한다는 취지로 개정된 새 국회법이 어느 다수당도 혼자서 결정적 입법을 하지 못할 국회를 만들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해 독자 입법권을 얻기 위해 기를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만이 처하게 될 이 독특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현 국회 다수당의 원내수장인 황 대표다. 이런 입법을 주도해 놓고도 하회탈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면서 역사 앞에 죄를 짓는지도 모르는 결정을 참으로 태연히 해치운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