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퇴화 보고서/피터 매캘리스터 지음·이은정 옮김/328쪽·1만5000원·21세기북스
근육질의 현대 남성도 고대 여성에게는 ‘지방 덩어리’로 보일지 모른다. 현대인의 뼈와 화석 인간의 뼈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200만 년 전에 비해 뼈의 양과 강도가 40% 정도 감소했다. 남성이 칼을 버리고 펜을 집어든 이후 근육량이 지속적으로 줄었고 이에 따라 뼈도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동아일보DB
탄탄한 몸매의 남성은 섹시하다. 셔츠 위로 살짝 드러나는 가슴 근육은 만지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매혹적이다. 여성이 근육질 남성에게 끌리는 건 DNA에 새겨진 본능이다. 남성의 우람한 근육은 수컷 공작의 꼬리와 같은 성적 신호이기 때문. 만약 2만 년 전 여성이 현대 남성을 만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성적 매력을 느끼긴커녕 ‘이 말랑말랑한 지방 덩어리들은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들들이 왜 이렇게 퇴화한 거야?’라며.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인간, 그중에서도 남성은 역사시대 이후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퇴보했다고 주장한다. 호주의 고고학자이자 고인류학자이고 또한 ‘남성’인 저자는 200만 년 전 원시인류부터 네안데르탈인, 지금도 존재하는 원시부족의 남성과 현대 남성을 다양한 종목에서 대결시킨다. 그 결과 힘과 전투, 운동, 섹스 같은 물리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음악, 암기, 육아까지 고대 남성이 현대 남성보다 우월했다고 밝힌다.
2004년 세계팔씨름연맹 챔피언인 알렉세이 보에보다와 네안데르탈인 여성 ‘라 페라시에 2’가 팔씨름을 한다면, 보에보다가 팔뚝이 뚝 부러지며 패하고 만다. 두 사람의 근육량과 강도 등을 계산한 결과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근육량은 여성보다 50% 더 많다. 미국의 전설적 권투 영웅 무함마드 알리는 21년간 61번의 경기를 치렀지만,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그리스 타소스 섬 출신 권투 챔피언 테오게네스는 22년 동안 무려 1400번의 경기를 했다. 16세기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농구와 비슷한 운동을 즐겼는데, 공의 무게가 무려 9kg으로 지금의 농구공보다 15배 무거웠다. 심지어 선수들은 27kg인 돌 허리띠를 차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 남성들은 역사상 그 어떤 남성보다 교육을 많이 받았으니 가장 문학적이고 창의적일 것이라고 믿지만, 이 영역 또한 고대 남성들이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문맹이었다. 그는 긴 서사시를 말로 짓고 모조리 외워 다시 말로 풀어냈다. 고대 사회에서 즉석으로 시를 짓고 낭송하는 행위는 중요한 문화 활동이었다. 하지만 문자가 생기면서 이 같은 활동은 힘을 잃었고 창의성도 줄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풍성한 사례는 물론이고 책 중간 중간에 들어간 삽화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못난’ 현대 남성과 사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육량과 공격성은 비례 관계가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고대 남성이 보이는 온갖 행동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공격적이고 잔인하다.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강간으로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저자의 경고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현대 남성)의 게으름이 우리 자신의 유전적 가능성뿐 아니라 아들의 유전적 잠재력까지 배반한다. 우리 아들도 잘 부러지는 뼈와 허약한 인대, 말랑한 근육과 뇌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루에 30분 이상 숨을 헐떡일 만큼 뛰고, 하루에 10분이라도 즉석으로 글을 지어 외우는 훈련을 하면 어떨까. 책의 원제는 ‘Manthropology’. 남성(man)과 인류학(anthropology)을 합친 조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