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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읽는 고전]문장경국지대업(文章經國之大業)

입력 | 2012-05-07 03:00:00

文: 글월 문 章: 글 장 經: 날 경 國: 나라 국
之: 어조사 지 大: 클 대 業: 업 업




위나라 창업의 초석을 다진 조조(曹操)의 맏아들인 조비(曹丕)가 전론(典論)의 논문(論文) 편에서 한 말로 제왕학의 기본은 인문정신 함양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불후지성사(不朽之盛事·썩지 않은 성대한 일)’와 대구를 이룬다. 여기서 말하는 문장이란 문학 역사 철학 등 다방면의 글을 두루 가리킨다.

수성의 제왕으로 꼽히는 조비는 33세에 제위에 올라 한나라 조정의 역법을 계승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위나라의 창업자다. 창업주인 조조와 제국의 몰락을 앞당긴 무능한 제왕인 조예(曹叡) 사이에서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제위에 오른 사람이 조비다.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三國志) ‘문제기(文帝紀)’에 따르면 ‘비(丕)’는 휘이고, 자는 자환(子桓)이다. 조조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맞이한 가기(歌妓) 출신의 무선변황후(武宣卞皇后)의 맏아들이다. 어려서 탁월한 독서력으로 경전을 두루 읽어 8세 때 글을 지었으면서도 활쏘기나 말타기, 검술에도 탁월한 문무(文武)를 겸비한 재인이었다. 그러나 스물다섯이나 되는 조조의 자식 중에서 맏아들의 위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막내인 조식(曹植)에게 밀려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다독거린 이가 바로 관도대전의 일등공신 가후(賈후)의 이 말이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인덕과 관용을 발휘하고 숭상하며, 평범한 선비의 업을 행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하며, 아들의 도리를 그르치지 않으면 됩니다.”(삼국지 위서(魏書) ‘가후전’) 마침내 제위에 오른 그는 인물 중심의 인사정책과 성현 공자를 추존하고 이민족도 다수 포용하는 등의 문치 위주의 정치를 펼쳤으며, 자신이 죽으면 안장하지 말고 척박한 땅에 묻되 어떤 부장품도 넣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시가(詩歌) 100여 편을 남길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했던 그는 조조(曹操), 조식(曹植)과 더불어 삼조(三曹)로 거론되며 중국 최초의 문인집단이라 할 수 있는 건안(建安) 문단을 이끈 비중 있는 인물로서 손색이 없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