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교수 제공
대창양행의 위스키 광고(만세보 1906년 11월 5일)를 보자. 위스키병 모양을 제시하고 “우이스기(위스키) 상품(上品) 직수입”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곧바로 다음과 같은 카피가 이어진다. “폐점(폐店·저희 상점) 일수(一手·독점) 판촉의 묵계. 남 우이스기난 품미(品味·맛) 양호하야 세계 각국에 전파 개지(皆知·모두 앎)하오니 상품(上品) 우이스기 구하시난(구하시는) 이난(이는) 폐점에 내구(來求·방문하여 구함)하시압. 본품은 경성 급(及·및) 인천 각 양화점(洋貨店)에셔도 판매하오.”
요약하자면, 위스키를 독점 판매하기로 묵계했으니 필요한 분들은 직접 상점에 와서 사가라는 뜻이다. 두루 알다시피 스코틀랜드의 토속주였던 위스키는 1900년대 초에 대량생산을 하면서 세계에 널리 퍼졌는데, 개화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벌써 들어왔던 것. 광고에서도 세계 각국에 전파되어 모두 알고 있다(皆知)는 점을 강조했다. 그만큼 양품(洋品)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고나 할까. 더욱이 일제강점기 이전인 1906년에 ‘우이스기(ウイスキ)’라며 일본어를 병기한 것을 보면 일본의 야심은 우리네 일상생활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