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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열린포럼 ‘할 말 있습니다’] 40대 직장인이 겪는 자녀와의 소통 어려움

입력 | 2012-05-08 03:00:00

“아이가 아빠를 피해요”… “자녀에게 정답만 강요말고 믿으세요”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40 열린포럼 할 말 있습니다’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멘토로 나선 이날 포럼에서는 40대 직장인 아빠 12명이 참석해 아이들과의 소통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황 교수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자녀를 ‘아버지의 틀’에 맞추지 말고 독립된 인격체로 보라”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40대 아빠 직장인들은 마음이 급하다. 회사에서는 관리자이다 보니 ‘나의 일’ 외에 부서 전체의 자잘한 일까지 챙겨야 한다. 임원 문턱에 서다 보니 힘들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회사 일로 심신은 약해지는데 가정도 녹록지 않다. 어느 집 자녀들이 휴대전화에 아버지를 ‘우리 집 꼰대’라고 입력해 두었다는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들다 보면 그저 푹 쉬고 싶은 주말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하려 애쓴다. 하지만 “아빠, 날 좀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라거나 “엄마! 아빠가 자꾸 귀찮게 해”라는 무서운 메아리가 돌아올 뿐이다. 》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직장인 12명이 2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멘토로 나서 이들과 고민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섰다. 황 교수가 시작하면서 던진 뜻밖의 말에 참석자들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애들하고 소통하는 데 비법이 뭐냐고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런 것은 없어요.”

12명의 얼굴은 일순간에 어두워졌다.

○ 자녀와 소통해야 할 이유부터 찾아라

아빠들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황 교수는 공격적인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애들하고 소통은 왜 해야 하는 건가요. 다들 먹고살기 바쁘고 힘들잖아요. 근데 피곤하게 왜 또 애들한테까지 시달려야 하냐는 말이죠. 아빠가 왜 소통해야 하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참석자의 말문이 막히자 황 교수는 말로 아빠들의 허점을 찌르려는 듯 빠르고 날카로운 톤으로 추가 질문을 던졌다.

“애들하고 소통 잘해서 공부 잘하게 만들고 그래서 좋은 대학 가서 어떻게 해야 학점 잘 받는지 가르쳐 주려고 소통하나요? 직장 다니는 요령도 알려주고 나중에는 결혼 요령에 이혼하는 요령까지 잘 가르쳐주는 멋진 아빠가 되려는 건가요?”

여기저기서 ‘피식’ 하는 웃음이 나오면서 슬슬 황 교수의 의도를 눈치 채기 시작했다. 평생 ‘품 안의 자식’으로 키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자녀 개개인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라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틀’에 맞추지 말고 ‘나는 나’ ‘자식은 자식’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내 아내이자 아이 엄마가 소통의 첫 관문

공무원인 고응석 씨가 질문을 던졌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이와 정말 소통이 잘 안 돼요. 아내와는 어떠냐고요? 솔직히 잘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이는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반면 장대석 씨는 “아내와도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애들과 아내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 양측에 대안도 제시해 주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부러움에 찬 ‘오∼’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황 교수는 “아빠와 자녀와의 소통은 남편이 아내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를, 자녀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자녀와 접촉 시간이 많은 아내의 자녀 양육 가치관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녀와 소통할 수 없다는 해석이 뒤를 이었다.

황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몇 가지로 구분했다.

△부모 성적표 유형 △블루칩 유형 △족쇄 유형

첫 번째 ‘부모 성적표 유형’은 아이의 성적표가 곧 엄마의 성적표라고 믿는 유형이다. 이들은 자녀에게 기대하는 정도에 따라 성과가 나온다고 믿는다. 자녀를 큰 수익을 낼 보장자산처럼 여기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블루칩 유형’이다. ‘족쇄 유형’은 아이 기르는 책임을 부담으로 느끼는 경우다.

○ 그저 들어주고 무관심 아닌 모른 척하기

아이들이 잘못한 점을 발견했더라도 그저 들어만 주고 애써 지적하려 하지 말고 일단 모른 척해 주라는 조언이 나왔다. 참석한 아빠들의 얼굴이 또 굳어졌다. 이런 심리가 반영된 듯 주세용 씨가 질문에 나섰다.

“맞는 말씀인 것 같기는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들도 누군가, 특히 아빠가 그저 들어만 주어도 좋겠죠. 한데 잘못된 점을 아빠가 그저 모른 척해 주긴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꼭 고치기를 바라잖아요. 아이가 그걸 알 수 있을까요? 모르면 문제가 더 커지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가 많았다. 황 교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말없이 친구 집에서 자고 들어온 자녀를 보았을 때 아무 말 하지 않는 부모를 보는 그 자식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부모가 무관심하다고 볼까요, 모른 척해 주는 거라고 여길까요.”

정답은 ‘부모에게 달렸다’였다. 자녀는 부모가 관심이 없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개의치 않는 것인지, 모든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해 주는 것인지 다 안다는 말이었다. 김형석 씨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는 여섯 살 난 아들 하나를 뒀는데요, 주말에 같이 놀려고 하면 장난감이나 게임만 찾기에 제지했더니 ‘기분이 나빠’라며 투정을 부려요. 이럴 때도 모른 척해 주어야 하나요.”

황 교수가 답 대신에 “그럴 때 아내는 뭐라시던가요, 남편을 지지하던가요?”라고 물었다. 주 씨는 ‘왜 당신 생각만 주장해서 애를 괴롭히냐’는 질책만 날아왔다고 고백했다.

황 교수는 “아내의 가치관 틀 속에서 남편의 개입이 효과를 발휘하지, 틀을 벗어나면 그냥 외면당한다”며 “자녀가 어리더라도 문제가 있다고 즉각적으로 제지하지 말고 같은 선택을 할 것인지 아이에게 두 번 세 번 물어봐 주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짜증을 낼지 모르지만 어린아이도 반복학습을 통해 잘못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한다고 덧붙였다.

○ 있는 그대로 아이를 인정하자

황 교수는 “부모는 자기 삶이 불안해서 ‘정답’을 찾으려 하고 그 해답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한다”며 “이런 틀 속에서 아이와 소통하겠다는 것은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진단했다. 빌 게이츠처럼 부모의 동의를 얻어 명문대에 진학하고도 학업을 포기한 채 자기만의 길로 나아가 성공한 사례도 설명했다. 고응석 씨의 반론이 제기됐다.

“그분이야 하버드대에 갈 정도로 똑똑하니까 부모도 그만두는 데 동의한 거지 대학도 못 갔다면 혼자 엉뚱한 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어떤 부모가 동의하겠습니까?”

공감한다는 의미의 웃음이 크게 터졌지만 황 교수의 답변이 이어지자 고개를 끄덕이는 참석자가 대부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하버드대에 가지 않았지만 스스로 학벌을 저울질하지 않았고 부모 역시 학벌과 개척의 길을 저울에 달지 않았죠. 묻지도 않고 아들의 선택을 믿었죠. 무관심이 아니라 믿으면서 모른 척해 주었을 뿐이죠. ‘정상’으로 보이는 길이 언제나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놓아두는 게 최선의 소통이 될 때도 적지 않답니다.”
■ 포럼 참석자 명단

▽멘토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50)

▽40대 직장인 아빠
강석웅 동양증권 부장(43)
고응석 행정안전부 사무관(46)
곽승훈 넥슨 실장(40)
김상수 롯데백화점 팀장(40)
김영범 SK텔레콤 매니저(40)
김형석 삼성물산 차장(41)
성기동 중소기업중앙회 차장(42)
유재형 동양증권 차장(41)
이원익 팬택 차장(41)
장대석 지엔커뮤니케이션즈 대표(40)
전의준 중소기업중앙회 차장(43)
주세용 LG화학 차장(40)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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