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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권순활]‘아름다운 동행’ 구본무와 허창수

입력 | 2012-05-10 03:00:00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지난달 24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88세 생일을 축하하는 미수연(米壽宴)이 열렸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 등 LG가(家) 사람들과 함께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참석했다. 지금도 LG 구씨 가문과 GS 허씨 가문은 한집안처럼 지내며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함께한다. 구본무 허창수 회장은 사업에서 동업(同業)관계를 끝낸 뒤에도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가끔 여행도 함께 떠날 만큼 인간적 우의를 이어간다.

계열 분리 후에도 이어진 우의


2004년 7월 출범한 GS는 이듬해 1월 LG에서 정식으로 계열 분리됐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잡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57년 동안 같은 그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두 가문이 각자의 길을 간 지도 7년 이상 흘렀다.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성공한 파트너 관계로 평가받는 두 가문은 사업에서의 이별 후에도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LG는 국내 주요 그룹 중 건설관련 계열사를 두지 않은 몇 안 되는 기업이다. GS에 건설업체가 있는 점을 배려해서다. 일부 LG 임직원 사이에서는 “우리도 건설사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구본무 회장은 “GS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일축한다. GS 역시 허창수 회장이 계열분리 직후 “신사업에 진출하더라도 LG와 사업영역이 겹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초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 그룹 사이에 동일 업종에서의 경쟁에 따른 파열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은 아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어느 책에서 ‘새는 먹이 때문에 죽고, 인간은 재물 때문에 죽는다’는 글을 읽었다. 물욕(物慾)에 약한 인간의 속성을 꼬집은 지적이다. 실제로 1억 원 안팎의 유산을 둘러싸고도 형제자매 간에 원수가 되는 집이 적지 않다. 반면 부모로부터 빚만 물려받지 않아도 고맙게 여기는 ‘없는 집’ 자식들이 오랫동안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재산의 파이가 큰 대기업 오너 집안일수록 갈등의 위험성은 높아진다. 최근 10여 년의 재계만 살펴봐도 범(汎)현대가를 비롯해 금호아시아나, 두산, 한진 등이 이런저런 홍역을 치르면서 이미지를 구겼다. 오래전의 재산상속 분쟁이 다시 불거지면서 얼마 전 날선 공방을 벌인 범삼성가의 삼성과 CJ도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양측 모두 상당한 사회적 상처를 입었다.

여러 기업의 내홍(內訌)과 비교하면 형제는커녕 성까지 다른 LG와 GS의 대주주 가문이 반세기가 훨씬 넘게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구본무 허창수 회장을 비롯한 두 그룹 전현직 경영자들의 상호배려와 금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업의 세계는 총칼만 들지 않은 전장(戰場)이라고들 하지만 정(情)과 덕(德)의 이미지는 두 그룹이 지닌 만만찮은 무형의 자산이다.

실적 뒷받침될 때 의미 커져


LG는 지난해부터 화학을 제외한 전자 디스플레이 통신 같은 주력 계열사의 실적 악화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올해 들어 LG전자가 다소 나아지곤 있지만 본격적인 회복까지는 아직 멀었다. 에너지 건설 유통이 주력인 GS는 비교적 사정이 괜찮지만 성장세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경영은 일차적으로 숫자로 말한다. 아무리 인간미를 자부하는 회사라도 실적이 나빠지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직원의 고용과 급여, 복지에 주름살이 간다. 국가로서도 세수(稅收)와 일자리가 줄어든다. 아름다운 이별과 동행을 이어가는 LG와 GS가 기존의 강점 위에서 혁신을 통해 수익성 증대와 지속적 성장을 이루는 데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적 따뜻함과 경영실적이 반드시 역함수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기업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보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