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삽화… 보림홍성찬갤러리서 전시회
홍성찬 화백은 자신이 그린 삽화의 원화 상당수가 유실된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과거엔 출판사 등에 원화를 넘기면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게 관행이었다. 60년간 활동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원화는 300여 점에 불과하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국내 1세대 삽화가 홍성찬 화백(83)이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책 ‘토끼의 재판’(보림출판사)을 최근 펴냈다. 당뇨에 노안이 겹쳐 그리기 힘든 상황에서도 매일 8시간씩 2년 동안 매달려 완성한 그림책이다. 9일 경기 고양시의 자택에서 만난 홍 화백은 “숙달됐으니까, 그저 지난 60년간 해왔듯 하나하나 선을 그었을 뿐”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던 홍 화백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6·25전쟁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전후 1955년 먹고살기 위해 ‘희망사’라는 출판사에서 잡지나 책에 들어가는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삽화료는 당시 쌀 두 되 값인 장당 40원이었다. “전문 삽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하다 보니 잡지사 신문사 출판사 등에서 일감이 계속 들어왔어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인지 삽화료도 좀 쌌거든.”
그가 글과 그림을 모두 담당한 건 ‘아빠는 어디에’(재미마주·2009년)에 이어 ‘토끼의 재판’이 두 번째다. 나그네가 허방다리(함정을 뜻하는 우리말)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줬다가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지만 토끼의 지혜로 목숨을 건진다는 내용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냈다.
후배 그림책 작가 류재수 씨는 책 마지막 장에 이런 추천사를 남겼다. “흐릿한 시력에 의지해 그린 탓에 지난날의 엄격하고 치밀한 묘사는 무뎌졌고 일부분은 형태가 흐트러졌다. 하지만 홍 선생 특유의 투박하고 온기 있는 서정은 예나 다름없었으며 화면에 스민 빛의 밝은 기운은 예전보다 풍부했다…‘나 홍성찬은 아직 건재하다오’ 하고 여유를 부리는 듯하다.”
홍성찬 화백이 펴낸 ‘토끼의 재판’. 보림출판사 제공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