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계종이 내건 화두는 ‘자정과 쇄신’이었다. 불교계가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불교 내부의 자정과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며 으뜸 과제로 불교 본연의 모습을 확립하는 수행(修行) 결사를 꼽았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웠던가. 조계종 총무원 코앞에 위치한 조계사의 주지와 부주지가 동시에 도박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장이 컸는지 이번 사건으로 총무원 부·실장 6명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도박 그 자체보다 비밀리에 호텔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13시간에 걸쳐 도박판을 촬영한 과정을 더 문제 삼고 있다.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고 도박 혐의로 고발한 성호 스님은 전부터 조계사 측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분명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억대 도박은 승속을 떠나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이다. 더구나 일반인보다 막중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스님들로서는 어떤 연유로 잘못이 드러났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