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미술품 경매사
뭉크의 ‘절규’ 경매가 사상 최고액
급진적이면서 지극히 새로운 실험적 시도에 갈망했던 그의 예술 지향은 당시 화단의 화풍이나 분위기로선 낯설 수밖에 없었고 뭉크의 작품은 늘 평단의 이슈 중심에 서게 됐다. 1892년 베를린협회전 전시에서는 수많은 비평가의 혹평으로 일주일 만에 전시를 철수해야 했다. 이후에도 뭉크는 수차례 더 독일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나치 치하에서는 퇴폐 미술로까지 폄하됐다. 그래서일까.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좀처럼 노르웨이 외에서는 볼 수 없었다. 최초의 파리 전시로 화제를 모았던 2010년 전시는 물론이고 수년 전 필자가 출장길에 들른 뉴욕 모마에서의 뭉크 전시에서도 ‘절규’는 실제 작품 크기의 메인 포스터로 감동을 대신해야 했다. 전시만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을 위한 음모설도 있었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명화 도난 사건에서도 ‘절규’는 빠지지 않았다. 미술사 교과서 등장 외에도 수많은 작가의 패러디 소재가 돼 대중적으로 각인돼 있지만 정작 실물을 보기 힘들었던 신비주의가 이 작품의 희소가치를 더욱 차별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간 출품된 뭉크의 ‘다리 위의 소녀들’이나 ‘뱀파이어’ 등 아름답고 개성 있는 구도의 유화 작품들이 250억 원에서 300억 원 사이의 낙찰기록을 보인 것을 보면 작품의 재료나 소재보다 작가를 대표하는 상징성과 미학적 의미가 훨씬 높은 소장가치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을 사는 타이밍은 있어도 좋은 작품은 불황기와 무관하다는 것을 종종 확인시켜 준다.
실물 보기 힘들어 희소가치 더해
이렇게 예술작품의 본래적 가치 외에도 그 작가와 작품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스토리는 경매시장에서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 1억 달러를 넘는 세계 ‘톱10’ 경매가 리스트에 3점을 올린 피카소 작품 중에 20세기 초 장미시대를 대표하는 작품 ‘파이프를 든 소년’은 암울했던 청색시대를 벗어나 탐미주의로 가는 피카소의 청년기 걸작이기도 하지만 언론재벌이었던 존 헤이 휘트너 부부가 평생 모은 컬렉션을 공공미술관 신축자금 조달을 위해 내놓은 최고의 소장품 중 하나여서 많은 애호가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에 팔린 뭉크의 ‘절규’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번 경매는 개인 소장자 또는 기관 입장에서 뭉크의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1점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2점은 뭉크미술관에 있다. 미술관 소장으로 전시되는 작품은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법이 거의 없다. 미술관에 소장돼 작품성이 높은 것으로 증명된 대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소장하려는 것은 모든 컬렉터의 열망이다. 얼마 전 카타르 왕가가 2억5000만 달러에 구입하며 단일 작품 그림값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제작된 5점 중 4점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파리 오르세미술관, 런던의 코톨드, 필라델피아의 반스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올해 신디 셔먼이 그 기록을 깨기 전까지 가장 비싼 사진으로 기록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 기록 또한 유사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2011년 11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380만 달러에 낙찰된 이 작품은 라인 강가를 찍은 것으로 뛰어난 프린팅 기술과 전례 없는 거대한 사이즈, 그리고 색감이 돋보인다. 이 작품의 같은 에디션 작품은 모두 테이트 모던, 글렌스톤 컬렉션, 뮌헨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렇듯 유명인의 소장품, 특히 미술관 또는 재단에서 소유한 작품들은 모든 컬렉터가 소장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꼽는다. 그래서 에디션이 있는 사진 작품의 경우 프로 작가들은 한정된 작품만 프린트해 희소성을 관리하고, 미술관에 소장되도록 노력한다.
막현호은(莫見乎隱).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남도 없다는 뜻으로, 중용에 나오는 이 말은 감춰져 있을수록 오히려 빛이 나는 예술품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품 너머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진정 기쁘다는 컬렉터 지인의 조언을 생각해본다.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미술품 경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