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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핫초코처럼 시작했다가 다크초콜릿으로 끝나는 男女

입력 | 2012-05-12 03:00:00

◇사랑의 기초-한 남자/알랭 드 보통 지음·우달임 옮김/192쪽·1만1000원·톨
◇사랑의 기초-연인들/정이현 지음/212쪽·1만1000원·톨




톨 제공

정이현(40)과 알랭 드 보통(43)이 사랑에 관한 소설을 함께 집필했다는 소식만으로 화제가 된 책이다. 달콤한 핫초코와 씁쓸한 다크 초콜릿을 번갈아 먹듯, 연애의 민낯을 감각 있게 풀어내는 정이현과 각박한 현대인의 일상을 날카롭고 지적인 시선으로 뚫어보는 보통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까 하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최초 기획 이후 2년 동안의 산통을 겪고 나온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뭐를 함께했다는 거지? 전혀 다른 책 아냐?

알랭 드 보통


정이현은 ‘연인들’ 편에서 서울에 사는 20대 후반의 민아와 준호의 연애를 그린다. 소개팅으로 만나, 작은 공통점을 ‘운명’이라고 느끼고, 급격히 빠져들다, 나중에는 시들어버리는 얘기. 보통은 ‘한 남자’ 편에서 영국 런던에 사는 30대 후반의 유부남 벤의 시점에서 결혼 후 시들해진 애정과 섹스 횟수, 직장 생활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 겪는 고충, 그리고 잠시의 외도를 짚어간다.

정이현

‘사랑의 기초’라는 같은 제목을 달았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주인공도, 배경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다. 기획 단계에서 보통은 “런던에 사는 한 남자와 서울에 사는 여자의 러브스토리를 남자와 여자의 시선으로 써보자”고 제안했지만, 정이현은 “하나의 서사를 남자 버전, 여자 버전으로 나눠 쓰는 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과연 얼마나 좋은 작품이 나올지 모르겠다”며 고사했다는 것. 작가들의 이견에 프로젝트는 답보 상태에 들어갔고, 결국 ‘사랑, 결혼, 가족’을 주제로 각자 경장편을 쓰자는 절충안이 선택됐다.

두 작가는 ‘결합’에는 실패했지만 각자의 특기는 충실히 살렸다. 통통 튀는 문체로 “큭큭” 웃음 짓게 만들다가도 연애의 날것을 날카롭게 부각하는 정이현의 능력은 여전히 빛난다. ‘다분히 즉흥적으로 책을 빌려올 때의 마음과,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것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랑이 저물어갈 때의 마음이 그것을 시작할 때의 마음과 전혀 다른 것처럼’과 같은 비유도 여운이 짙다. 보통의 ‘한 남자’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벤의 소소한 일상은 배경이 될 뿐 실제 내용은 결혼, 섹스, 일, 성공 등에 관한 생각을 보통이 직접화법으로 풀어간 것들이다. 보통이 해석한 결혼은 이렇다. ‘하나의 제도였던 결혼이 느낌에 헌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결혼은 외부에 의해 승인되고 정당화되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내부에서 우러난 마음상태에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되었다.’

두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한 남자’에는 두 작가가 각자의 원고를 바꿔본 뒤 지난해 9월 진행한 대담이 실려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