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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차 한잔]‘조지 오웰…’ 고세훈 교수 “설익은 지식인의 권력욕 지적하고 싶었죠”

입력 | 2012-05-12 03:00:00


조지 오웰은 자신의 전기를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고세훈 교수는 오웰의 지식인으로서의 정신을 알리고 싶은 강한 충동으로 전기를 써내려갔다고 말했다. 고세훈 교수 제공

‘권력의 주변을 서성대는 지식인들에게’

서문 제목이 날카롭다.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57)의 신간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다. 소설 ‘1984’ ‘동물농장’ 등을 남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삶과 사상, 글쓰기의 면모를 담은 전기다. ‘영국 노동당사’ ‘국가와 복지’ 등 영국 정치와 복지국가에 대한 책을 다수 출간해온 정치학자가 돌연 작가의 삶을 꿰뚫었다. 고 교수는 서문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오웰의 고발과 비판은 권력(자)·가해(자)를 향해 치열하게 열려 있고, 권력과 가해의 주변에는 늘 지식인이 서성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권력 언저리에서 킁킁대며 안일과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에 대한 거대한 보고서일지 모른다.”

그는 1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연구 역량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꾸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계에 가서도 안정된 역할을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어, 오웰을 통해 ‘이런 지식인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오웰은 투철하게 글을 쓰기 위해 현장의 민중들과 끊임없이 어울렸던, 철저한 지식인이었죠.”

그는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지식 중심의 보상체계를 가졌고 지식인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사회”라며 “한국에서 지식인은 곧 권력자이기에 그만큼 책임도 크다”고 강조했다.

오웰은 인도 제국경찰로 버마(미얀마)에 파견됐다가 식민지의 실상을 체험하고 5년 만에 사직한 뒤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교사, 책방 점원, BBC 프로듀서, 노동당 좌파기관지 ‘트리뷴’의 문예편집장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꾸준히 글을 발표했다.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 생활을 체험하고 자전적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쓰기도 했다.

고 교수가 오웰에 빠져든 것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서 지낸 2004년, 전공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독서를 하면서다. 오웰이 남긴 장편산문 9권과 수많은 에세이, 서평, 칼럼 등을 섭렵하며 오웰이 지식인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책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오웰의 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그의 정신을 한국사회에 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표현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고 교수는 남들이 오웰에 대해 쓴 2차 자료보다 오웰이 쓴 글을 직접 읽어내는 데 집중했다. 오웰은 소설 외에도 700여 편의 에세이 서평 칼럼 기사를 남겼다. 이 책의 주(註)와 참고문헌 목록만 66쪽에 이른다. “오웰의 삶의 토대는 ‘정직’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글쓰기, 사상이 삼각편대를 이루며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고 교수는 “오웰이 견고한 사상을 지닌 것과 달리 여자 문제로 평생 힘들어했다”며 “여성들에게 자기 마음을 받아달라고 간곡히 쓴 편지들을 보면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